pathemata mathemata

Posted by sckimynwa on January 24, 2024 · 2 mins read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약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서 기술적인 능력치나 이해도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보다 본질적인 의미에서의 지식. 즉 “파테마타 마테마타(고통으로부터 배운다)”를 통해 얻은 지식에 대한 것이다. 문제를 발견하고 정의하는 사람으로서나 발견하거나 정의된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으로서 마주한 것들에 대해 “고통”을 받지 않았기에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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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을 돌아보며 내가 참여한 “게임”들에 대해 돌아보았다. 큰 판돈을 걸고 참여한 게임들에 대해서는 여지없이 파테마타 마테마타의 영역으로 들어가 몸에 새겨진 참지식을 얻을 수 있었지만, 판돈을 걸지 않아도 참여할 수 있는 게임들에 대해서는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했다.

내가 존재하는 집단의 시스템이 학습을 통해 진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시스템의 보상에 기여하지 못하거나, 혹은 손실을 만들어낸 “부적합한 자”들이 시스템에서 퇴출 당하는 비아 네가티바 방식이 전개되어야 한다. 역사에 기록된 전쟁 영웅들은 실패의 리스크를 온전히 감수했다. 적장의 목을 베거나, 자신의 목이 베여 시스템에서 퇴출되거나.

영향력은 가지나, 그 영향력에 대한 책임은 갖지 않는 불균형의 상태가 오래 지속될수록 그 인간이 존재하는 사회는 붕괴한다. 그리고 내가 속한 집단에서 내가 그러한 존재에 가깝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몇 가지의 제안을 하지만, 그 제안이 실패했을 때 내가 감당해야 하는 고통이 없기에 이 시스템 안에서 나라는 인간은 학습되지 못한다. 기껏해야 “실패로부터 배웠다. 다시 시도해보자”라는 공허한 외침만을 전달할 수 있을 뿐이다.

실패해도 “노력하느라 고생했으니 하반기 보너스를 받으며 쉴 수 있는” 안락한 지금의 상황에서 벗어나 선택이 실패했을 때 고통을 받으며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해야만 하는 시스템으로 스스로를 옮겨야 함을 느낀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올바른 방향을 알 수 있어야 하는데, 이 방향은 고통을 통해서만 경험적으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동료들의 평가에 자신의 운명이 크게, 혹은 직접적으로 영향받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을 ‘자유인’이라고 부를 수 있다.

큰 판돈을 걸고 게임에 참여하면 그 누구도 자만하거나 의미 없는 훈수는 두지 않을 것. 말하는 사람은 행동할 것이고, 행동하는 사람만이 말할 것이다. 오직 생존을 보장하는 행동만이 유의미하고 합리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