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rity, genius, crypto
누군가 미국 국채를 사주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이 질문이 2026년 크립토 시장의 흐름을 이해하는 출발점이다.
미국의 국가부채는 2026년 3월 기준 38.6조 달러를 넘어섰다. 매년 최소 2조 달러 이상의 신규 국채를 발행해야 정부 지출을 감당할 수 있는 구조다. 문제는 이 채권을 사줄 사람이 점점 줄고 있다는 것이다. 2010년대 초반 1.3조 달러에 달했던 중국의 미국 국채 보유량은 2025년 12월 기준 6,385억 달러까지 떨어졌다. 2008년 이후 최저치다. 중국은 2022년부터 2024년까지 매년 수백억 달러 규모의 미국 국채를 매각했고, 같은 기간 금 보유량을 꾸준히 늘렸다. 브라질은 1년간 미국 국채 보유량을 27% 줄였고, 인도는 20% 감축했다. BRICS 국가들이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미국 채권 시장에서 빠져나가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여전히 1.2조 달러로 최대 외국인 보유국 지위를 유지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불안한 구석이 있다. 일본의 민간 투자자들이 장기 국채를 매도하는 움직임이 2025년 상반기에 포착되었고, 엔화 약세에 따른 환리스크가 일본 금융기관들의 미국 국채 보유를 점점 부담스럽게 만들고 있다.

이 거대한 진공 상태에서, 미국은 새로운 국채 구매자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 답이 스테이블코인이다.
stablecoins as the new treasury buyers
2025년 7월 18일, 트럼프 대통령은 GENIUS Act(Guiding and Establishing National Innovation for U.S. Stablecoins Act)에 서명했다. 미국 역사상 최초의 디지털 자산 연방 법률이다. 상원에서 68대 30, 하원에서 308대 122로 초당적 지지를 받아 통과된 이 법안은, 표면적으로는 스테이블코인의 규제 프레임워크를 만드는 것이지만, 그 안에 담긴 구조적 의도는 훨씬 깊다.

GENIUS Act의 핵심 요구사항은 간단하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자는 발행량의 100%를 미국 달러, 단기 국채(만기 93일 이내), 또는 현금성 자산으로 보유해야 한다. 발행자는 증권법상 증권으로도, 상품거래법상 상품으로도 분류되지 않는다. 대신 은행비밀법(Bank Secrecy Act)의 적용을 받아 자금세탁방지 및 제재 관련 의무를 진다. 발행자가 파산하면 스테이블코인 보유자가 다른 모든 채권자보다 우선하여 준비금에 대한 청구권을 갖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100% 준비금을 단기 국채로 보유해야 한다"는 조항이다. 이것은 단순한 규제가 아니라, 스테이블코인 시장이 성장하는 만큼 미국 국채 수요가 자동으로 늘어나는 구조를 법으로 만든 것이다. 재무장관 스콧 베센트가 직접 "스테이블코인은 전 세계 수십억 명에게 달러 접근성을 확대하고, 스테이블코인을 뒷받침하는 미국 국채에 대한 수요 급증을 가져올 것"이라고 말한 이유다.
현재 스테이블코인 시장 규모는 약 3,000억~3,200억 달러다. Tether(USDT)가 1,860억 달러, Circle(USDC)가 그 뒤를 따른다. Standard Chartered는 2028년까지 이 시장이 2조 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고, Bernstein은 2035년까지 4조 달러를 예측했다. ARK Invest는 2030년까지 1.4조 달러를 추산하면서, Tether와 Circle이 현재 시장점유율과 국채 배분 비율을 유지한다면 두 회사만으로 6,600억 달러 이상의 미국 국채를 보유하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는 중국의 현재 보유량에 근접하는 수치다.
ARK Invest의 Lorenzo Valente는 "스테이블코인 산업이 2030년까지 중국과 일본을 제치고 미국 국채 최대 보유자가 될 수 있다"고 썼다. BIS(국제결제은행)의 연구에 따르면, 35억 달러 규모의 스테이블코인 유입이 5일 내에 3개월 만기 국채 금리를 2~2.5bp 낮추는 효과가 이미 관측되고 있다. Standard Chartered에 따르면, 스테이블코인 성장과 연준 매입을 합산하면 2028년까지 약 2.2조 달러의 신규 T-bill 수요가 발생하는데, 현행 발행량으로는 약 9,000억 달러의 공급 부족이 생긴다. 이 갭을 메우기 위해 재무부가 단기채 비중을 높이고 30년물 발행을 중단할 수 있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정리하면 이렇다. 중국과 BRICS가 빠져나간 자리를 스테이블코인이 메우고 있다. 그리고 GENIUS Act는 이 흐름을 법적으로 고정시킨 것이다.
the interest ban and what comes after
GENIUS Act에는 하나의 역설적인 조항이 있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자는 보유자에게 어떤 형태의 이자나 수익도 지급할 수 없다. USDT를 갖고 있다고 해서 이자를 받을 수 없다. 이것은 스테이블코인이 은행 예금의 대체재가 아니라 "결제 수단(payment stablecoin)"이라는 성격을 명확히 하려는 의도다.
그런데 법안은 교묘한 빈틈을 남겼다. 발행자가 직접 이자를 주는 것은 금지하지만, 제3자 플랫폼이나 거래소가 스테이블코인 활동에 대해 리워드를 제공하는 것은 명시적으로 금지하지 않은 것이다. Coinbase는 이미 USDC를 보유한 사용자에게 "리워드"를 지급하고 있고, 이것이 법적으로 이자인지 로열티 프로그램인지를 놓고 은행업계와 크립토 업계가 치열하게 대립하고 있다. 미국 은행 협회(ABA)를 포함한 40개 이상의 금융업 단체는 이 "허점"을 막아야 한다고 로비 중이다.
이 대립의 구조를 숫자로 보면 더 명확해진다. Tether가 1,860억 달러 규모의 USDT를 발행하고, 준비금 대부분을 T-bill에 넣는다. 현재 금리 수준에서 Tether는 준비금만으로 연간 수십억 달러의 이자 수입을 올린다. 그런데 이 수익을 보유자에게 돌려줄 수 없다. 발행자가 국채 수익을 독식하는 동안, 보유자의 USDT는 0% 수익률로 지갑에 놓여있는 것이다.
이 구조가 만들어내는 결과는 명확하다. 사용자들은 스테이블코인을 단순히 "들고 있는 것" 대신 "활용하는 것"으로 향하게 된다. DeFi 프로토콜에 예치해서 대출 이자를 받거나, 유동성을 공급해서 수수료를 받거나, 볼트(Vault)라 불리는 자동 운용 상품에 넣어서 큐레이터가 운용하는 수익을 받거나. 이 "활동 기반 리워드"는 법적으로 발행자의 이자 지급과 다르기 때문에, 현행 규제 초안에서도 허용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금리 하락 환경도 이 흐름에 순풍이 된다. 전통 금융의 예금 금리가 내려갈수록, DeFi 기반 스테이블코인 수익률의 상대적 매력이 올라간다. 보수적인 온체인 볼트에서도 연 3~8%를 제공하는데, 이것이 기존 은행 예금의 대안으로 충분히 매력적인 수준이다. 2026년부터 금리 하락이 본격화되면, 이쪽 수요는 점점 더 붙을 수밖에 없다. 이자 금지가 오히려 스테이블코인 위의 금융 생태계를 폭발시키는 촉매가 되는 것이다.
geopolitics as an investment filter
개인적으로 어떤 자산이나 기술에 확신을 가질 때, 지정학적 구조를 가장 큰 요소로 고려하는 편이다. 국력과 지배력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있는가. 해당 자산이 특정 국가의 전략적 이해관계와 맞물려 있는가. 정치적으로 돌이킬 수 없는(irreversible) 수준의 제도적 뒷받침이 존재하는가.
2025년까지만 해도 스테이블코인은 크립토 시장의 결제 인프라, 거래소 간 자금 이동 수단 정도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GENIUS Act 이후의 스테이블코인은 차원이 다르다. 미국 달러의 글로벌 지배력을 디지털 영역으로 확장하는 도구이자, 중국과 BRICS가 빠져나간 국채 시장의 빈자리를 메우는 재정적 장치이며, 전 세계 어디서든 달러에 접근할 수 있게 만드는 디지털 달러화(dollarization) 엔진이 되었다.
ARK Invest는 스테이블코인을 "미국 국채를 보유하는 트로이 목마"라고 표현했다. 전 세계에 달러 사용을 확산시키고, 그 과정에서 자동으로 미국 국채를 매입하게 만드는 구조라는 것이다. HSBC 애널리스트들은 "잘 규제된 스테이블코인 시장이 디지털 금융 세계에서 미국 달러의 지배력을 공고히 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탈달러화를 추진하는 BRICS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카운터 전략이 되는 셈이다.

이것은 정치적 바람이 아니라 구조적 바람이다. 공화당이든 민주당이든, GENIUS Act는 68대 30의 초당적 지지로 통과되었다. 스테이블코인이 미국 국채 수요를 창출하고 달러 패권을 강화하는 한, 어떤 행정부도 이 흐름을 되돌리기 어렵다. 정치적으로 되돌릴 수 없는 수준의 제도적 뒷받침이 이미 만들어진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을 크립토의 수도로 만들겠다"고 선언한 것은 단순한 선거 공약이 아니다. 달러 패권 유지라는 미국의 가장 핵심적인 국가 이익과 직결되어 있다.
Goldman Sachs, JPMorgan, Citi 등 월스트리트의 대형 금융기관들이 자체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검토하고 있고, PayPal(PYUSD), BlackRock(USDTB), Ripple(RLUSD) 같은 거대 기관들이 이미 시장에 진입했다. Apple, Google, Meta도 스테이블코인 통합을 검토 중이라는 보도가 있다. 이것은 더 이상 크립토 네이티브들의 실험이 아니다. 미국의 금융 인프라가 스테이블코인 위에서 재편되기 시작한 것이다.
what to watch
GENIUS Act의 규제 세부사항이 2026년 11월경 본격 시행된다. OCC, FDIC 등 규제기관들의 최종 규칙 제정이 진행 중이고, 스테이블코인 발행 허가 신청이 줄을 잇고 있다. Circle은 OCC에 국법신탁은행(national trust bank) 인가를 신청한 상태다. 이 규칙들이 확정되면, 스테이블코인 이자/리워드의 경계가 어디까지 허용되는지가 결정된다. 은행업계와 크립토 업계의 로비전이 2026년 가장 치열한 전선이 될 것이다.
스테이블코인의 국채 매입 규모가 중국의 보유량에 근접하는 시점이 가시권에 들어온다. 이것은 크립토 시장의 이벤트가 아니라, 미국 재정과 글로벌 달러 패권의 구조적 전환점이다. 금리가 내려가고, 규제가 명확해지고, 기관이 들어오는 환경에서, 스테이블코인 위의 금융 생태계는 더 이상 실험이 아니라 인프라가 된다.
2026년의 크립토 흐름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다. 디지털 달러가 미국 국채를 사고, 그 위에 새로운 금융 시스템이 올라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