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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pty boat mindset

empty boat mindset
Photo by Nils Söderman / Unsplash
강을 건너던 한 남자가 있었다.
갑자기 다른 배가 그의 배와 부딪혔다.
남자는 화를 내려다가 문득 깨달았다.
그 배는 비어있었다. 배에 아무도 타고 있지 않았다.
화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기원전 4세기, 장자가 남긴 이 우언은 우리의 분노가 어디에서 오는지를 꿰뚫는다. 분노는 충돌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그 충돌에 의미를 부여한 우리에게서 온다는 것이다. 우리는 세상에 의도를 덧칠하고, 거기서 발생하는 환영에 감정을 입힌다.

존재하는 세상에 의도를 덧칠하는 것은, 우리가 세상을 보는 나름의 관점이 있기 때문이며, 이 관점은 우리 안에 선험적, 경험적으로 채워진 것들로부터 비롯된다. 이것은 의도적으로 우리가 비우지 않는 한 시간축을 따라 퇴적되어, 시간이 흐르면 흐를 수록 우리로 하여금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즉, 우리의 세계관을 왜곡하는 것이다.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게 되는 상태, 세계를 왜곡하지 않는 인식의 능력을 도가에서는 "무위"라 칭한다. 무위의 경지에 도달하면 개인이 지향해야 하는 상태를 시간축에 따라 채워져야 할 것이 아닌, 대립하는 것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공존시킬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된다.

이는 개인이 성장을 정의함에 있어서 "대기만성(大器晩成)"으로 알려진 시간축의 서사를, "대기면성(大器免成)"의 서사로 해석하고 끝끝내 이루어지지 않음을 지향하도록 이끈다.

대방무우(大方無隅) 정말 큰 사각형에는 모서리가 없고
대음희성(大音希聲) 정말 큰 소리는 들을 수 없고
대상무형(大象無形) 너무 큰 것은 형태가 없다
하여, 대기면성(大器免成)은 큰 그릇은 이루어짐이 없다는 뜻이니
- 도덕경

큰 그릇은 "면(免)", 즉 굳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어떤 특정한 모양으로 고정되지 않고, 하나의 형으로 완결되지 않는다. 특정한 정체성 속에 시간축에 갇혀 굳어지지 않고 평생동안 계속 열려있는, 형태 없는 큰 그릇으로 사는 태도가 무위이다.

몇개의 반복적으로 관찰되는 사실들을 "진리"로 섣부르게 추상화하여 그 추상화된 "진리"에 반하는 것들을 무시하거나 합리화 해버리는 플라톤의 주름지대(Platonic Fold)에 빠지지 않고, 복잡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태도 또한 일종의 무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큰 그릇은 이루어짐이 없다.
다가오는 저 수많은 배들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다름아닌 나 자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