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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e and ash

fire and ash
Photo by Ted Balmer / Unsplash

2025년은 미국 현대 산업사에서 가장 야심 찼던 실험이 물리적 현실이라는 거대한 벽에 부딪혀 의도한 수술을 집도하지 못하고 끝나버린 해였다. 트럼프 행정부 2기가 출범하면서 내세운 비전은 미국의 "재산업화(reindustrialization)" 였다. 40년간 미국 경제를 지배해온 금융 자본주의와 글로벌 공급망의 혈관을 인위적으로 끊어내고, 미국 본토에 제조업의 근육을 다시 이식하겠다는 거대한 외과 수술을 집도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연말 결산 시점에서 마주한 성적표는 처참하다. 트럼프와, 팔란티어로 대표되는 피터 틸 동맹이 보여준 강력한 의지는 시장의 물리 법칙 앞에서 무력했다. 금리는 내려가지 않았고, 공장은 지어지지 않았으며, 공급망의 말단은 여전히 중국이라는 거대한 중력장에 포획되어 있다. 이 실패의 구조를 이해하는 것이 2025년의 거대한 서사를 이해하고, 2026년의 불확실성 속에서 나름의 규칙을 찾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madmen are needed

트럼프는 광인이다. 그의 관세 정책은 자유무역 시대의 흐름에 정면으로 역행하고, 그의 트윗은 시장을 롤러코스터처럼 출렁이게 만든다. 그러나 나는 지금이 광인이 필요한 때라고 생각한다.

We wanted flying cars, instead we got 140 characters. - Peter Thiel

지난 50년간 미국은 비트(bits)의 세계(소프트웨어, 인터넷, 모바일)에서는 혁신이 일어났지만, 원자(atoms)의 세계(에너지, 교통, 제조업)는 정체된 상태로 머물러 있었다. 그리고 이 정체는 기술의 한계가 아니라 제도의 경화, 리스크 회피, 관료주의의 비대화에서 온다. 그리고 이 굳어버린 구조를 깨기 위해서는 정상적인 접근으로는 불가능하다. 다양성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 산업 기반을 다시 뜯어고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중국에게 진다. 그리고 미국이 중국에게 진다는 것은 세계가 그동안 당연시 여겨왔던 자유민주주의, 프라이버시, 표현의 자유등이 더 이상 당연해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트럼프는 관세라는 채찍으로 글로벌 공급망을 끊어내고, 미국 본토에 공장을 다시 세우려 했다. 그리고 이 새로운 공장들은 과거의 러스트벨트 공장이 아니라, 소프트웨어가 하드웨어를 정의하는 스마트 팩토리여야 했다. 일론 머스크가 "공장이 곧 제품이다"라고 말했듯이, 생산 시스템 자체가 경쟁 우위가 되는 새로운 제조업. 이 비전의 운영체제(OS)로 선택된 것이 팔란티어의 워프스피드였다.

팔란티어의 핵심 제품이지만, 아직 시장에서 진가를 확인하지 못한 것이 바로 WarpSpeed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구조적 변화에 베팅해서 팔란티어를 투자했었다. 2025년 주가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 가파르게 올랐다. 그러나 정작 내가 팔란티어에 기대했던 미국 산업화의 구조적인 개선에서는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본다. 정부 계약 확대, AI 테마의 부상, 방산 수요 증가. 팔란티어를 지탱하는 여러 다른 축들에서의 임팩트로 인한 것일 뿐, 정작 미국 재산업화에는 기여한 바가 아직 크지 않다. 미국 제조업의 심장에 워프스피드가 이식되었을 때, 비로소 그 가치와 함께 팔란티어를 둘러싼 여러 도덕적, 정치적인 문제들이 수면위로 떠올라 공론화될 것이라 본다.

barriers to reindustrialization

결과적으로 2025년 미국의 재산업화는 실패했다고 보아야 한다. 언제나 기술만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에, 미국의 재산업화를 방해한 요인들 역시 기술 외적인 요소들에서 찾아야 한다.

첫째, 연준의 장벽이다. 결국 파월 의장은 3.5%의 고금리 기조를 고수했다. 트럼프가 금리 인하를 종용하고 해고 위협까지 가했지만, 파월은 움직이지 않았다. 이 금리 수준에서 기업 CEO의 계산기는 명확한 답을 내놓는다. 수십억 달러를 빌려 공장을 짓는 불확실한 도박보다, 무위험 이자가 보장되는 단기 국채에 돈을 묻어두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다. 기업들의 자본 파업은 반국가적이어서가 아니라, 불확실성이라는 비용이 너무 비싸기 때문에 발생했다.

둘째, 관세의 역설이다. 트럼프는 관세라는 채찍으로 기업들을 협박하여 공장을 짓게 하려 했다. 그러나 기업들은 미국 내 생산이라는 정공법 대신 우회로를 택했다. 멕시코와 베트남을 통한 원산지 세탁. 미국에 공장을 짓고 팔란티어를 도입해 생산성을 올리는 불확실한 도박보다, 뒷문을 통해 중국산 부품을 계속 쓰는 것이 당장의 손익계산서에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 가성비 마약이 끊기지 않는 한, 진정한 재산업화는 불가능하다.

셋째, 글로벌화의 관성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중간재의 종속이다. 전기차 모터의 핵심인 영구자석, 미사일과 공작기계에 들어가는 PCB 등은 90% 이상 중국이 공급망을 장악하고 있다. 미국 기업이 최종 조립을 한다 해도, 핵심 부품 공급사가 중국 기업이라면 팔란티어의 워프스피드는 공급망의 가장 중요한 부분에서 데이터가 끊기게 된다. 중국 공급사들이 자신들의 데이터를 미국 정보기관과 연결된 팔란티어에 넘겨줄 리 만무하다.

넷째, 노조의 저항이다. 트럼프 2기의 가장 큰 딜레마가 여기서 발생한다. 트럼프는 노동자의 표로 당선되었다. 그러나 그가 추진하는 재산업화는 필연적으로 자동화와 무인화를 지향한다. 노조 입장에서 AI와 자동화는 악마의 기술이다. 기업은 노조의 파업이 두려워 AI 도입을 주저하고, 트럼프 행정부 역시 지지율 관리 차원에서 노조를 강하게 찍어 누르지 못한다. 기술은 준비되었으나, 정치가 멈춰버렸다.

engineering a recession

2025년의 실패를 목격한 트럼프는 당근으로는 이 굳어진 구조를 깰 수 없음을 깨달았을 것이다. 기업들은 배가 불렀고, 위기감이 없으며, 변화를 거부한다. 남은 방법은 하나다. 강제적인 위기를 설계하는 것이다. 결국 트럼프는 경기 침체를 유도할 가능성이 높다. 2025년 마지막에 그가 짜둔 프레임들은 그가 2026년 경기 침체를 일으킨 뒤 "자신이 아닌 무능한 바이든 정부와 연준 탓"으로 돌리는데 도움을 주는 것들이다.

트럼프는 불타는 플랫폼을 설계하려 한다. 스태그플레이션이나 경기 침체로 매출이 급감하고, 고금리로 이자 비용을 감당 못 하는 상황이 오면 기업들의 생존 본능이 발동한다. 여유 부리던 노조는 회사가 부도 위기에 처하면 파업을 멈출 수밖에 없다. 변화를 거부하던 중간 관리자들은 구조조정 1순위가 된다. 이때 비로소 경영진은 살기 위해서 팔란티어 같은 극단적 효율화 도구를 도입하게 된다.

플랫폼이 불타야 파괴적인 선택을 내릴 수 있다.

경기 침체를 유도해 적자생존의 게임으로 판을 새로 짜는 것. 트럼프는 구제금융을 주지 않을 것이다. 죽으려 하는 기업에게 구제금융을 해주지 않는 방향. 죽을 기업은 죽고, 살 기업은 기술로 살아남는 적자생존의 게임. 변화하지 못하고 중국산 링거에만 의존하던 레거시 기업들이 파산하면, 테슬라나 안두릴 같은 AI 무장 기업들이 헐값에 자산을 인수하며 산업 지형을 재편할 것이다. 파괴를 통한 재건축. 이것이 트럼프가 그리는 시나리오다.

fire and ash

2025년이 트럼프와 기득권이 서로 잽을 날리며 간을 본 탐색전이었다면, 2026년은 모든 화력을 쏟아붓는 열전이 될 것이다. 글로벌 기업들은 막대한 현금 보유고를 무기로 주가를 방어하고, 로비력을 총동원해 트럼프의 정책을 무력화하려는 참호전을 펼칠 것이다. 소송전이 시작될 것이고, 관세 행정명령에 위헌 소송과 집행 정지 가처분 신청이 따라붙을 것이다.

2026년은 불과 재의 시대가 될 것이다.

그리고 트럼프는 더욱 강력한 내부의 적 몰이와 경기 침체 유도를 통한 판 엎기로 대응할 것이다. 고통스럽더라도 썩은 살을 도려내야 한다며 지지층에게 인내를 호소할 것이다. 워싱턴은 1년 내내 소송과 고발이 난무하는 전쟁터가 될 것이다.

우리는 지금 창조적 파괴가 아닌, 파괴를 통한 생존의 가장 과격한 버전을 목격하기 직전이다. 이것은 투자가 아니라 전쟁이다. 그리고 전쟁에서는 살아남는 것이 유일한 승리다. 전체적인 흐름을 봐야 한다. 어떤 파도는 올라타 서핑할 수 있지만, 어떤 파도는 반드시 피해야만 한다.

“Antifragility is beyond resilience or robustness. The resilient resists shocks and stays the same; the antifragile gets better.” - Nasim Taleb

지금과 같은 장에서는 안티프래질의 교훈을 떠올려야 한다. 살아남고 버티는 데 집중해야 한다. 방향이 일관되지 않는 변동성의 파도가 몰아칠 때, 중요한 것은 파도에 올라타는 것이 아니라 파도에 휩쓸리지 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