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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ounder mo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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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Blake Meyer / Unsplash
"Their advice could be optimistically summarized as 'hire good people and give them room to do their jobs.' He followed this advice and the results were disastrous." — Paul Graham, Founder Mode

폴 그레이엄은 Founder Mode를 소개하며 창업자 특유의 광적인 집중력을 조명했다. 브라이언 체스키가 Airbnb를 키우며 배운 교훈은 명확했다. 회사에 위기가 닥쳤을 때, 기존의 Manager Mode, 즉 관리 중심 운영 방식은 작동하지 않는다. 창업자가 직접 조직의 방향을 제시하고, 가장 어려운 문제를 직접 해결해야 하며, 세부사항까지 관여하고, 자신의 비전을 조직 전체에 스며들게 해야 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언제나 Founder Mode를 켜둔 상태로 살아갈 수는 없다. 세상에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일하며 영향력을 발휘하는 사람들도 있으며, 그중에는 오랜 기간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위대함에 이르는 이들도 있다.

Flounder Mode는 한 가지에 모든 것을 거는 대신, 여러 관심사를 따라 움직이며, 명확한 목적지보다는 과정 자체를 중시하는 작업 방식이다. 어쩌면 일하는 방식을 비롯한 모든 것을 새롭게 재정의해야 하는 지금의 시대에, Floundering은 나약함이나 몰입의 부재로 해석되기보다, 오히려 더 오래, 더 지속 가능하게 일하는 방법으로 받아들여져야 할 지도 모른다.

The Rise and Fall of the Integrated Human

르네상스 시대의 이상은 "전인적 인간(Homo Universalis)"이었다.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는 "인간은 원한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선언했고, 이것은 단순한 낙관주의가 아니었다. 당시 지식인들에게 지식은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전체였다. 수학과 예술, 과학과 철학, 공학과 시학은 서로를 필요로 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그 원형이다. 그는 화가였지만, 동시에 해부학자였다. 인체를 그리기 위해 시체를 해부했고, 그 과정에서 심장의 작동 원리를 발견했다. 그는 엔지니어였지만, 동시에 음악가였다. 물의 흐름을 연구하며 악기의 소리 전달을 이해했다. 그에게 이 모든 탐구는 하나의 통합된 호기심의 표현이었다.

하지만 이런 인간상은 19세기 산업 혁명과 함께 점차 사라졌다. 애덤 스미스가 핀 공장의 분업을 칭송한 순간부터, 효율성은 곧 전문화를 의미하게 되었다. 대학은 학과로 쪼개졌고, 학문은 세분화되었다. 20세기에 이르러 학자들은 점점 더 좁은 주제에 대해서만 점점 더 많이 알게 되었다.

이에 따라 한 우물을 파는 것이 현대의 지혜가 되었다. 10,000시간의 법칙이 위대함에 이르는 길로 제시되고, 전문가들이 인정받는 사회가 되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우리는 무언가 중요한 것을 잃어버렸다. 서로 다른 분야 사이의 연결, 통찰이 태어나는 경계, 창의성의 원천인 교차점을 잃어버린 것이다. 우리는 전문화된 지금의 사회가 "원래 그랬던" 것으로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본래 르네상스적이었으며, 지난 한 세기동안 우리는 이것을 빼앗긴 것이다.


Dilettante(아마추어)와 Specialist(전문가) 사이에는 제3의 길이 있다. Polymath, 즉 박학다식가다. 이들은 피상적인 폭도, 좁은 깊이도 거부한다. 대신 여러 분야에서 진지한 깊이를 추구하며, 더 중요하게는 그 분야들 사이의 연결을 찾아낸다.

David Epstein은 《Range》에서 흥미로운 사실을 밝혔다. 노벨상을 받은 과학자들은 평균적인 과학자들보다 예술 활동에 참여할 확률이 두 배 이상 높았던 것이다. 그들은 음악을 연주하고, 그림을 그리고, 시를 썼다. 이것이 단순한 여가가 아니라는 증거는 그들의 증언에서 나온다. 한 생물학자는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단백질 접힘 문제를 풀었다고 말했다. 다른 화학자는 조각을 하며 분자 구조를 이해했다.

이것이 바로 cross-pollination이다. 한 분야의 통찰이 다른 분야의 혁신을 불러일으킨다. 스티브 잡스가 서예 수업에서 배운 타이포그래피가 매킨토시의 아름다운 폰트를 만들었다. 에드워드 윌슨은 개미를 연구하며 인간 사회의 패턴을 발견했다. 패러데이는 철학자이자 시인이었고, 그의 전자기학은 그의 시적 상상력에서 태어났다.

현대 사회는 이런 연결을 체계적으로 차단한다. 대학은 학과별로 나뉘어 있고, 회사는 부서별로 분리되어 있으며, 전문가들은 자신의 영역을 지킨다. 하지만 실제로 가장 흥미로운 문제들은 경계에 있다. 기후 변화는 물리학이자 경제학이고, 인공지능은 컴퓨터 과학이자 철학이며, 팬데믹은 의학이자 정치학이다. 이런 문제들을 풀려면 경계를 넘나들 수 있는 사람들, 즉 Polymath들이 필요하다.

문제를 푸는 차원을 떠나 개인적으로도, Polymathy는 한 인간의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든다. 한 가지 일에만 몰두하는 것은 위험하다. 그 일이 잘못되면, 정체성 전체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러 관심사를 가진 사람은 다르다. 하나의 프로젝트가 막히면 그저 다른 프로젝트로 에너지를 옮기면 된다. 에너지를 옮겨 다른 프로젝트를 탐색하는 과정에서 또 열어볼 수 있는 새로운 문을 발견하게 된다. 삶은 하나의 좁은 통로가 아니라, 여러 갈래가 있는 정원에 가까운 것 같다.

Polymathy는 지속 가능한 삶의 태도이기도 하다. 한 가지에 광적으로 집중하는 것은 강렬한 임팩트를 남길 수 있지만, 소모적이기도 하다. 번아웃은 전문가들의 직업병이다. 하지만 관심사를 옮겨가며 일하는 사람은 다르다. 한 분야에서 지쳤을 때, 다른 분야가 휴식이 된다. 물리학자가 소설을 쓰고, 프로그래머가 목공을 하고, 의사가 음악을 연주하는 것은 "딴짓"이 아니다. 그것은 에너지를 충전하는 방법이고, 더 오래 게임에 머무르는 전략이다.

역설적으로, 우리는 지금 Polymath가 가장 가능한 시대에 살고 있다. 인터넷은 거의 모든 지식에 대한 접근을 민주화했다. MIT 강의를 집에서 들을 수 있고, 3D 프린터로 제품을 만들 수 있으며, 유튜브로 악기를 배울 수 있다. 과거에는 한 도시에 있는 도서관과 대학이 제공하는 지식에 한정되었지만, 지금은 세계의 지식이 손끝에 있다. 누구나 무엇이든 원하기만 한다면 2주 안에 배울 수 있는 시대가 찾아왔다.

Life as a Process

전인적 인간에 이은 Flounder Mode의 또다른 핵심 중 하나는, 삶과 커리어를 목적지가 아닌 과정으로 보는 태도에 있다. 완벽을 목표로 하지 않는, 점진적이고 지속적인 개선의 상태를 의미하는 "Protopia"를 지향한다.

Kevin Kelly - Flounder Mode

Utopia는 완벽한 끝을 약속하고. Distopia는 파멸을 경고한다. 하지만 둘 다 종착점을 가정한다. Protopia는 다르다. Protopia는 방향을 의미할 뿐, 어떤 목적지를 제시하지는 않는다. 매년 1%씩 조금씩 나아지는 세상, 완벽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개선되어 가는 모습이다. 새로운 문제가 생기기도 하지만, 그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 역시 함께 자라난다.

이는 커리어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완벽한 직업적 성취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흥미로운 프로젝트를 찾아가는 것. "도달했다"고 느끼는 순간, 성장은 멈춘다. 위대한 사람들이 절대 자신의 삶에서 무언가에 "도달했다"고 느끼지 않는 이유다. 그들은 어딘가에 도착했다고 느끼지 않고, 항상 다음 호기심, 다음 질문, 다음 프로젝트를 향해 움직인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경력의 "illegibility"는 결함이 아니라 특징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한 줄로 요약되지 않는 경력은 흥미로운 일을 하고 있다는 증거다.

나심 탈레브의 Antifragility가 주는 교훈은 명확하다. "Stay In the Game". 한 번의 큰 도박으로 모든 것을 얻으려 하기보다, 게임에 머무르며 하방은 닫혀있고 상방은 열려있는 베팅들을 계속하면서 살아남는 것이다. Power Law의 세계에서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연꽃이 연못을 가득 채우는 임계점의 순간은 게임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에게만 찾아오게 마련이다.

Flounder Mode는 바로 이것이다. 한 가지에 모든 것을 걸고 빨리 타버리는 대신, 여러 관심사를 탐험하면서 오래 불을 지피는 것. 광적인 집중으로 30대에 성공하고 40대에 공허함을 느끼는 대신, 꾸준한 호기심으로 70대까지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