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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ounding habits

grounding habits
Photo by Isaac Wendland / Unsplash

이번 여름은 무척이나 더웠다. 8월 들어 31도로 떨어진 최근 몇 주간의 날씨가 시원하다고 느껴질 정도다. 회사를 한번 오가면 진이 빠지고, 한번씩 비라도 오면 우울감이 들어 그냥 그대로 다시 누워서 뒹굴거리고 싶어지는 날들이 유난히 많았다. 이럴 때, 삶을 지속하게 만드는 습관을 가지고 있으면 우울하고 진이 빠지는 상황에서 뭐라도 시작할 수 있다. 그리고 일단 뭐라도 시작하면 그 다음은 그다지 어렵지 않은 경우가 많다. 다행히 이번 여름은 몇 가지 습관으로 인해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들에도 일단 일어나 하던 일들을 지속할 수 있었다.


pomodoro

독서 모임에서 추천받아 지난 몇 주간 25분 집중 + 5분 휴식을 기본으로 하는 시간 관리 방법인 pomodoro 를 사용하고 있다. 앱 스토어에서 Mac + iPhone 을 함께 지원하는 Session이라는 앱을 X에서 추천받아 설치했다. 사용 방법은 간단하다. 우선 자리에 앉아 앞으로 25분동안 무엇을 할지를 Session 앱에 한줄로 적고 25분동안 집중한다. 물론 뭘 해야 할지 명확하지 않은 상태로 그냥 25분의 집중시간을 시작한 뒤, 그때 고민하기도 한다.

앱을 켜고 헤드셋을 착용하고 나면 25분 동안은 파도소리 같은 잔잔한 ASMR이 들려온다.(내가 원하는 소리를 설정할 수 있는데 나는 잔잔한 파도소리를 선택했다!) 25분이 지나고 나면 타이머가 울리고, 25분 동안 무엇을 했는지 적는 메모란이 나온다. 25분동안 했던 일들에 대해 1~2분정도 시간을 내어 환기 시킨뒤 5분에서 10분 정도 쉬고 다음 일을 반복한다.

하루 24시간을 전부 이렇게 쪼개서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할 때, 그리고 해야 할 수많은 일들에 밀려 압도감을 느낄 때(overwhelmed) 사용한다. 어떻게 보면 pomodoro를 사용하는 것은 inner game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겠다. 하기 싫은 생각들, 수많은 할 일들에 압도되어 무력해지는 마음들을 저 멀리 밀어놓고 현재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아무리 무언가를 하기 싫어도 일단 25분 정도를 앉아만 있는 건 비교적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렇게 25분동안 뭐라도 하고 나면 그냥 뒹굴지 않고 어떻게든 이 시간을 버텨서 내 것으로 만들었다는 성취감이 따른다. 25분 이후 회고할 내용을 적다보면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같은 생각이 들면서 대개는 바로 다음 25분 타이머를 켜게 된다.

pomodoro를 하면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순간은 25분 뒤 1~2분 동안을 회고하며 메모하는 시간이다. 상자밖의 생각을 하는데 정말 도움이 많이 된다. 특히 엔지니어의 정체성을 가지고 특정 문제 해결에 몰두하다보면 문제 해결 과정에서 심연으로 깊이 들어가 "아 될 것 같은데, 될 것 같은데" 하면서 4~5시간을 소모하기가 일쑤다. 25분 타이머로 이 흐름을 한번씩 깨주고, 25분동안 넌 뭐했니? 를 강제로 적게 하면 이 일의 ROI와 우선순위를 판단하기 쉽게 해주고,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쉽게 만들어준다.

사용하고 있는 Session App의 Mac 버전.

workout

운동에 보다 강제성을 부여하고 있다. 습관적으로 운동을 갔었는데, 올해 들어 하루 최소 10시간에서 14시간씩 일을 하는 것이 반복되다보니 기초 체력 자체가 많이 떨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기초 체력 자체가 떨어지면 기초 체력을 기르기 위해 운동을 하러 가는 것이 귀찮아지는 악순환에 빠진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 아내와 심도깊은 상의 끝에 운동에 보다 강제성을 띄는 방식을 적용하게 되었다. 적용한 강제성은 크게 2가지 인데, 비용을 지불하는 것과, peer presure를 주는 방식이다. 이런 방식으로 현재 크게 3가지 운동을 하고 있다.

먼저 테니스다. 이전 글인 inner game에서도 언급한 바 있듯이, 아내와 함께 1주일에 1번 30분 아침 레슨을 받는다. 지난 글 이후, 1주일에 2회로 레슨 횟수를 늘리고 레슨직후 30분간 연습을 더 하는 것으로 운동 시간을 늘렸다. 테니스는 삶에 대한 태도를 기르는 것뿐 아니라 기본적인 심폐지구력, 순발력을 기르는데 큰 도움이 된다.

다음은 풋살이다. 전 직장 동료들과, 현 직장 동료들, 그리고 동생들을 모아모아 어느덧 12명 정도의 멤버가 모인 톡방이 생겼다. 격주로 한번씩 토요일에 2시간짜리 경기를 한다. 15분 뛰고 5분 쉬고를 2시간 동안 반복하는데, 틈만 나면 전력질주를 하는데다가, 방향전환이 잦아 전반적으로 체력 자체를 기르는데 큰 도움이 된다. 운동하고 돌아와서 찬물로 샤워를 하고 나면 그 뒤 2~3시간 정도는 밀도있는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컨디션이 된다.

마지막은 헬스다. 기존에도 집 앞 헬스장을 등록해서 다니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혼자 운동을 하다보니 강도가 약해질 수밖에 없다. 주 3회 3km 달리기와 가벼운 근력 운동이 전부였다. 그마저도 최근에는 거의 달리기만 했다. 전반적으로 근육량을 더 늘리고, 특히 하체 근육을 조금 더 키워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아이들을 낳으면 업고 하루종일 놀러다녀야 하지 않겠는가?

다른 운동이야 백번 양보해서 특유의 성실함으로 어떻게든 해볼 수 있다 하더라도 하체 운동, 등 운동은 정말 싫어하는 운동이라 누군가가 강제로 옆에서 하라고 해주어야만 할 것 같았다. 감사하게도 아내의 지원으로 집 앞 헬스장에서 주 2회 근력과 자세 교정을 위한 PT를 받고 있다. 물론 여전히 주 2~3회 3km달리기는 계속하고 있지만, 강제로 주말에 한번 주중에 한번 강한 근력 운동을 하는 것은 30대와 40대를 건강하게 맞이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고 느꼈다. 특히 PT 코치님은 재활운동 자격증, 물리치료 자격증이 있는 분을 찾는것이 중요했는데, 내 몸과 근육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도를 높이는 것이 장기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reading books

개인적으로 독서 자체를 좋아한다. 다만 해야 하는 일들이 많다보니 독서를 하면서 "지금 내가 책을 읽고 있어도 되나?" 하는 막연한 죄책감이 있어 많은 시간을 할애하진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pomodoro를 하게 되면서 25분으로 독서 시간을 강제로 끊을 수 있게 되면서 이 부담이 훨씬 줄어들었다. 업무량이 오히려 늘어났음에도 독서 하는 시간, 글 쓰는 시간이 늘었다.

특히 25분의 독서 이후 강제로 찾아오는 정리 시간이 정말 즐겁다. 지금 읽고 있는 책 뿐 아니라 다른 책들, 회사에서 일어나는 일들, 가정에서 일어나는 일들, x에서 읽은 내용들을 한데 엮어서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 독서는 두뇌를 계속 사용하게 만들면서도 내가 지금 집중해야 하는 다른 일들과는 다른 맥락을 공유하기 때문에 머리를 환기시키기에 좋다. 특히 주말에 외출을 준비하는 아내를 기다리는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 한다.


house chores

주말에, 혹은 퇴근하고 돌아와서 자잘한 집안일들을 한다. 애초에 해야 할 것들이 많진 않지만, 그마저도 짧게 끊어서 최대의 자기효능감을 느낄 수 있는 것들 위주로 한다. 이를테면 빨래 세탁기에 넣기, 빨래가 다 된 세탁물들을 건조기에 넣기, 설거지 헹궈서 식기세척기에 넣기, 로봇청소기에 물통 채워넣기 등이다.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집안일은 자기 효능감의 최후의 보루이자, 삶을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출발점이 된다. 하염없이 늘어지고만 싶을 때, 누워서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는 대신, 작은 일이라도 집안일을 해내고 나면 다음 25분 pomodoro를 위한 최소한의 자존감이 채워지는 것 같다. 작은 일들이라도 마치고 나면 꼭 아내에게 큰 소리로 이러이러한 일들을 했노라고 외친다. 그러면 나는 하루를 지속하면서 훌륭한 남편이라는 칭호를 하루 더 연장할 수 있게 된다.


세상에는 시간이 해결해주는 문제들이 많은 것 같다. 그러나 시간이 "내" 문제를 해결해 주기 위해서는 일단 참여하고 있는 게임에 머무르며 죽이되든 밥이되든 일단 조금씩 앞으로 나가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컨디션이 좋을 때만 무언가를 해서는 챔피언이 될 수 없다. 컨디션이 나쁠 때에도 삶을 지속하게 만드는 습관들이 필요하다. 그리고 나에게 이러한 습관들은 과거의 직관과는 다르게 지극히 사소한 것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