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ner game
선수가 자신의 백핸드보다 집중하는 법을 배우는 게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외면 게임의 선수에서 이너 게임의 선수로 전환한다. 그러면 테니스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집중하는 법을 배우는 대신, 집중력을 키우기 위해 테니스를 연습한다. 이는 외면에서 내면으로의 중요한 전환이다.
- 테니스 이너 게임
테니스에 매력을 느껴 아내와 레슨을 시작한지 어느덧 5개월째가 되었다. 로저 페더러, 라파엘 나달, 노박 조코비치로 대표되는 테니스라는 운동이 주는 우아함에 매료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테니스를 시작하게 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티머시 갤웨이의 "테니스 이너 게임" 이라는 책을 읽은 것이다.
매 순간마다 다양한 규칙이 적용되는 게임을 해내야만 하는 상황속에서 나만의 이너 게임을 플레이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집중력이 고갈되어가는 사회에서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방법을 길러 나의 집중력을 지켜내고 현재를 온전히 살아내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레슨을 자주 받진 않아서 아직 필드에 나가 플레이할 정도는 아니지만, 올해 말 정도가 되면 가벼운 랠리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내년 즈음에는 아내와 함께 가벼운 매치 정도를 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너 게임을 하기 위해, 현재에 집중하는 방법을 체득하기 위해 테니스를 시작했다보니, 레슨을 받을 때 내가 관심 갖는 건 오로지 한 가지다.
현재,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기.
책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거릴 때와는 다르게, 막상 코트 위에서 다양한 방향으로 빠르게 날아오는 공을 마주하는 상황을 경험하다보니 이너 게임을 한다는 것은 이를 방해하는 수많은 관성적 요소들을 자아1 저 너머로 밀어내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이는 곧 "훈련으로 얻어내야만 하는 것"이다.
매 샷 마다 코치님의 피드백이 날아온다. 다리를 조금 더 끌어라, 허리를 조금 더 돌려라, 라켓 방향을 조금 더 바꿔라. 공을 친 뒤에 라켓이 등 뒤에 닿도록 해라.... 모든 피드백이 유효하지만 공을 칠 때마다 이 모든 피드백들을 한번에 반영하려고 하면 자아1은 무너진다. 허리의 움직임에 신경쓰면 라켓을 놓치고, 라켓에 신경쓰면 공을 놓친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금세 피로해지고, 피로해진 몸은 이전에 익숙했던 방식으로 공을 치려 한다.
이너 게임의 교훈은 이 피드백을 자아1을 활용해서 하나하나 고치도록 하지 않는 것에 있다. 피드백은 자아2가 알아서 습득하도록 두고, 자꾸만 현재에 몰입하지 못하고 전체 게임을 통제하려는 자아1의 관심을 "지금 이 순간"으로 옮겨두는 것이다. 그래서 최근 2주 동안은 매 샷마다 5~6가지의 피드백을 모두 적용하려고 신경쓰는 대신 지금 이 순간에만 신경쓰는 연습을 했다.
- 코치님의 라켓을 떠난 공이 바닥에 한번 튕길 때, "하나" 라고 외치고, 내 라켓에 맞을 때 "둘" 이라고 외치기 (bounce-hit)
- 내 라켓을 떠난 공이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는지 끝까지 관찰하기
- 내 들숨과 날숨에 집중하기
지금 이 순간에만 집중하는 것은 지난 2주간 놀라운 결과를 가져왔다. 동작에는 여유가 생겼고, 코치님도 연습을 많이 한 것 같다고 피드백을 주셨다. 무엇보다 현재에 몰입한 상태를 경험하게 되는데, 이때 시간이 느려지고 동작에 여유가 생기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시력이 좋아진 것이 결코 아닐텐데, 실제로 공의 미세한 움직임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고, 머리가 맑아지고 다른 생각이 없어지는 몰입의 상태에 들어간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이제는 이 이너 게임의 교훈을 코트가 아닌 다른 삶의 자리에도 끌어들이려 한다. 짧은 기간 테니스를 통해 이너 게임을 배우며, 이너 게임이 필요한 곳이 비단 테니스 코트에 국한되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삶은 복잡한 게임이다. 동시에 수용해야 하는 수많은 피드백들이 있고, 결정해야 하는 수많은 상황들이 있다. 자아1이 이를 모두 통제하고 처리하도록 두면 쉽게 지치고, 모든 일들을 능숙하게 처리해낼 수도 없으며, 관성으로 돌아가 익숙했던 방식으로 일을 처리하게 된다.
한번 이런 관성으로 돌아가면, 게임을 플레이하는 과정 자체가 무너져 버렸으니 도전하는 과정 자체에 의미를 두기보다는 이 도전을 승리로 바꾸어내는 것에 집착하게 된다. 평정심이 잃게 되고, 불안감에 사로잡혀 판단력이 흐려진다. 지난 몇 달간 자주 겪었던 일이다.
이너 게임은 승리에 집중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큰 도전에서의 장애물을 기꺼이 받아들여 매 포인트에 집중하게 하는 방식으로 도전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돕는다. 도전이 승리로 이어지는 데에는 분명 나 혼자만의 힘으로 달성할 수 없는 외부의 요인들이 작용하지만, 이 도전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장애물을 극복하기 위해 현재에 집중하는 것은 나 혼자만의 힘으로 달성할 수 있다. 이너 게임으로 전환하는 순간 나 자신에 대한 신뢰의 문제로 바뀌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지금의 도전을 승리로 만들어내는 것보다 지금의 도전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다음에 더 큰 도전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스스로에 대한 신뢰의 도약이 필요했던 것 같다. 그리고 이는 이너 게임을 통해 기를 수 있는 역량이라 믿는다.
서퍼는 큰 파도가 주는 도전을 가치 있게 여기기 때문에 이를 기다린다. 왜 그럴까? 바로 이러한 장애물, 즉 강력한 힘으로 휘몰아치는 집채만 한 파도야말로 서퍼가 최선을 다하도록 만든다. 큰 파도를 상대할 때만 자신의 모든 기술과 용기, 집중력을 총동원해서 이를 극복하려 하는 것이다. 바로 그 순간, 그는 자신의 능력의 한계를 느낄 수 있다. 최고의 기량이 발휘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