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ed life
연꽃 한 송이가 호수 위에 떨어졌습니다. 이 연꽃은 매일 크기가 두 배씩 늘어나며, 50일째 되는 날 호수 전체를 덮습니다. 그렇다면 이 연꽃이 호수의 절반을 덮는 날은 몇 번째 날입니까?
안티프래질의 철학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아 그런지, 오래 지속하고 싶은 관계가 생기면 먼저 "이 관계가 위기를 맞았을 때 어떻게 될 것인가"를 숙고하게 된다. 큰 문제가 생기지 않는 한 최소 70년 이상을 함께 하게 될, 인생에서 가장 깊고도 중요한 관계인 배우자와의 관계를 생각할 때는 더욱 그렇다.
지금의 아내는 8년 전인 2017년에 만났다. 스무 살 때 처음 만나 어느 덧 20대 후반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는데, 감사하게도 그 동안 자칫하면 이별로 이어질 수 있었던 큰 갈등이라던가 서로가 시시해지고 권태감을 느끼는 시기는 없었다. 그러나 아내와는 지금까지 함께 해온 시간보다 앞으로 함께 해야 할 시간이 적어도 4~5배는 더 많을 것이고, 이는 지금은 관계에서 드러나지 않는 작은 문제들이 수십년 후에는 복리효과로 작용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커질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관계든 필연적으로 갈등이 찾아오게 마련이므로, 복리 효과를 고려한다면 관계를 다루는 데 있어 중요한 것은 갈등의 횟수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갈등을 다루는 방식을 잘 관리하는 것이다. 즉, 대부분의 갈등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막는 것이 아니라, 어떤 갈등이 수십년 동안 굴러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것을 막는 것이다. 제대로 다뤄지지 못해 수십년 동안 불어난 단 하나의 갈등이 잘 다뤄온 수천 가지의 다른 갈등들을 압도한다.
이를 고려한다면 소중한 관계를 오래 지속하기 위해서는 관계에서 발생하는 갈등의 횟수를 줄이는 것을 목표로 삼기보다는 오히려 초기에 크고 작은 여러 갈등들을 건강하게 드러내고, 이를 잘 다루는 방식을 익히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이를 위해 아내와 작은 습관을 하나 만들어 두어달 정도 지속하고 있다. 매일 밤 퇴근하고 나서 차를 한잔 내리고 20분 정도의 짧은 시간동안 아내와 티타임을 하는 것이다. 시간은 짧지만 티타임에서 다루는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다. "오늘 하루 어땠어?"와 같은 모호하고, 겉돌기 쉬운 답변이 나올만한 질문은 최대한 피한다. 대신 미리 정해진 50개 가량의 질문이 들어 있는 질문 템플릿을 사용하거나, 그날 좋은 질문이 떠오른 사람이 먼저 질문을 준비하기도 한다.

티타임의 목적은 오래 만났기 때문에 서로를 잘 알고 있고 이해하고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 상대의 행동이나, 기억, 습관의 기저에 자리하고 있는 여러 요소들을 발견하고 이해하는 것이다. 단순히 아내가 어떤 색깔을 좋아하고 어떤 노래를 듣는가를 아는 것을 넘어서 함께 공유하는 기억들 중 지금 떠오르는 가장 강렬했던 기억은 무엇이었는지를 아는 것. 그리고 그 기억이 강렬했던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그것이 강렬했다면 비슷해 보이는 다른 기억도 강렬하게 같이 떠오르는지 그것이 아니라면 그 둘 사이의 차이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등을 아는 것이다.
이런 대화를 나누다 보면 어떤 상황에 대해 반응하는 상대방의 감정과 행동, 그리고 그 아래 깔려있는 더 깊은 감정들, 그리고 그것들을 촉발한 여러 기억들과 상황들에 대해 더 깊이 알 수 있게 된다. 그것이 내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을 때 느끼게 되는 상대방에 대한 호기심은 이 관계를 더 사랑하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처음 듣는 유년 시절의 기억이 퍼올려지기도 하고, 공유하는 기억들 중 나는 행복한 기억으로 기억하고 있던 것이 몇 가지 이유로 상대방에게는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기도 한다. 이런 대화들이 누적되다 보면 가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상대방을 바라보았을 때, 짜증이 나기보다는 이번에는 무엇이 이 사람으로 하여금 이런 행동을 하게 했을까가 궁금해지게 된다. 그리고 나 역시 상대방에게 짜증의 대상으로 비춰지는 것이 아니라 호기심의 대상으로 비춰지게 될 것이라는 사실은 이 관계에서 큰 안정감을 주기도 한다.
티타임 중 '올해 우리에게 있었던 일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무엇이냐' 라는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내심 결혼식이나 신혼여행 이야기가 나오리라 예상했고, 아내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아내가 어떤 이야기를 했을 때 내가 아내의 마음에 공감하여 같이 눈물을 흘렸던 이야기를 꺼냈다. 물론 지금 물어본다면, 지난 달 같이 여행에 갔던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고, 결혼식을 다녀온 다음에 물어보았다면 우리의 결혼식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당시의 아내에게는 여러 일들로 인해 안정감을 느끼는 것이 가장 중요했고,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 자신에게 깊이 공감해준다는 사실이 큰 안정감을 제공했던 것이다.
상대방은 깊은 우주다. 상대방이 갖고 있는, 그리고 내가 갖고 있는 모서리를 하나하나 발견해서 그것의 기원을 찾고, 그 우주를 이해하는 것은 나의 삶을 지탱하는 큰 기둥 중 하나이다.
나와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며 가장 깊게 영향을 미치고, 가장 깊게 영향을 받을 사람들과의 대화, 그리고 그 대화가 이루어지는 방식을 고민하고 결정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매우 중요한 투자이다. 이들 중 가장 중요한 대상인 아내와 이런 대화를 결혼생활 초기부터 시작하게 된 것을 큰 축복으로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