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ld money, new money
권력의 본질은 변하지 않지만, 권력의 주체는 바뀐다. 역사를 통틀어 볼 때 권력 이동의 순간은 항상 격렬했다. 봉건 귀족이 상인 계급에게 밀려났을 때도, 산업 자본가가 금융 자본가에게 자리를 내주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 과정은 언제나 부드럽지 않았는데, 당연하게도, 기득권은 자신의 특권을 절대 자발적으로 포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트럼프와 연준 사이의 금리 논쟁이 잦다. 11월 들어 연준을 향한 트럼프의 압박은 더 강도가 높아진 것처럼 보이는데, 이를 단순히 중간선거를 위해 금리를 내려야만 하는 트럼프의 압박으로만 해석하게 되면, 조금 더 큰 그림을 보는 것이 어려워지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지금의 이 상황을 Old Money와 New Money 가 제대로 한번 맞붙는 체제 전쟁으로 보고 있다. 연준과 월스트리트로 대표되는 기존 금융 질서와, 트럼프와 피터틸류의 기업가들로 대변되는 신흥 권력 사이의 충돌인 것이다.
How Wall Street Owned the Game

Old Money의 시스템은 놀라울 정도로 정교하다. 연준가 월 스트리트가 지배했던 세계는 단순히 자본의 크기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이들은 하나의 생태계로서 이해되어야 한다. 연준이 통화 정책을 결정하고, 월스트리트가 자본을 배분하며, 워싱턴의 관료들이 규제를 설계하는 삼각 구도. 이 시스템은 70년 넘게 미국 경제를 움직였고, 세계 금융의 중심축 역할을 해왔다.
이 시스템의 핵심에는 '예측 가능성'이 있었다. 연준은 물가와 고용이라는 명확한 듀얼 맨데이트에 따라 움직였다. 인플레이션이 높으면 금리를 올리고, 경기가 침체되면 금리를 내렸다. 시장 참여자들은 이 규칙을 완벽히 이해했고, 그에 맞춰 자신들의 게임을 설계했다. 월스트리트가 "연준에 맞서지 마라(Don't fight the Fed)"라는 격언을 금과옥조처럼 여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연준이라는 심판이 규칙을 명확히 제시하는 한, 그들은 그 규칙 안에서 얼마든지 수익을 낼 수 있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른바 'Fed Put'이라 불리는 암묵적 보험이었다. 시장이 폭락하거나 금융 위기가 올 때마다 연준은 어김없이 개입했다. 금리를 내리고, 유동성을 공급하며, 자산 가격을 다시 끌어올렸다. 2008년 금융위기, 2020년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이 패턴은 더욱 확고해졌다. 월스트리트는 이 규칙 하에서 레버리지를 높여 공격적으로 투자해도 괜찮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연준이라는 안전망이 항상 그들을 받쳐주기 때문이다. 비대칭적 이익 구조다. 수익은 사유화하고 손실은 사회화하는 완벽한 시스템. 그리고 월스트리트는 이 시스템의 최대 수혜자였다.
이 질서 하에서 JP모건, 골드만삭스, 블랙록으로 대표되는 Old Money는 막대한 자본을 축적했다. 단순히 돈이 많은 것을 넘어 돈을 계속 불릴 수 있는 시스템 자체를 소유했다. 규제를 설계하고, 정책에 영향을 미치며, 시장의 방향을 결정하는 권력. 이것이 진짜 Old Money의 힘이었다.
The New Money Rebellion

피터 틸로 대표되는 New Money에게 연준 중심의 금융 시스템은 기생충처럼 보인다. 실물 경제는 정체되는데 금융 자산만 부풀어 오르는 구조. 혁신과 생산보다 금융 공학과 레버리지가 더 많은 부를 창출하는 세상. 일론 머스크가 테슬라를 만들고, 제프 베이조스가 아마존을 키우는 동안, 월스트리트는 그들의 주식을 사고팔며 수수료를 챙겼다. 진짜 가치를 만드는 것은 기업가들인데, 진짜 돈을 버는 것은 금융업자들이었다.
New Money의 관점에서 Old Money의 시스템은 지속 불가능했다. 연준이 돈을 찍어내며 자산 가격을 부양하는 방식은 결국 인플레이션과 화폐 가치 하락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2020년대 들어 인플레이션이 급등하면서 이러한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게다가 이 시스템은 본질적으로 불공평했다. 자산을 가진 사람들은 더 부유해지고, 노동에 의존하는 사람들은 뒤처지는 구조였다.
트럼프의 모든 행동들을 옹호하는 입장은 아니지만, 트럼프의 이해할 수 없는 행보들은 New Money의 대변인이라는 프레임으로 생각해보면 그의 입장에서 어느 정도 납득이 되기도 한다. 트럼프가 내세운 정책들은 기본적으로 Old Money 시스템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 관세를 통한 제조업 보호, 감세를 통한 기업 경쟁력 강화, 규제 완화를 통한 혁신 촉진. 그리고 무엇보다 연준의 독립성에 대한 공격. 트럼프는 연준이 자신의 경제 정책을 방해한다고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금리를 더 빨리 내려야 한다고 압박했다. 심지어 리사 쿡 같은 연준 이사를 특유의 프레이밍을 통해 해임하겠다고 위협하기도 했다.
이것은 단순한 정책 불일치가 아니다. 트럼프는 연준이라는 Old Money의 핵심 권력 기관을 자신의 통제 하에 두려는 것이었다. 마치 적대적 인수합병처럼, 그는 연준이라는 '기업'의 경영권을 빼앗으려 했다. 리사 쿡은 그 과정에서 제거해야 할 '알박기 지분'이었다. 그녀를 몰아내고 자신의 충성파를 심으면 연준 이사회 7명 중 과반인 4명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금리 결정권이 사실상 트럼프의 손에 넘어가는 것이었다.
The Fed: Trapped Between Two Masters

이 전쟁의 한가운데에 진퇴양난에 빠진 연준이 있다. 한 쪽에서는 트럼프가 금리를 내리라고 압박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월스트리트가 독립성을 지키라고 요구한다. 그 사이에서 연준은 자신의 존재 이유를 증명해야 했다.
리사 쿡 이사의 행동은 이러한 딜레마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트럼프의 압박에 굴복하면 어떻게 될까? 단기적으로는 갈등을 피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는 자신의 법적 보호막을 스스로 해체하는 것이다. 연준 이사는 '정당한 사유'가 있어야만 해임될 수 있다. 그 정당한 사유란 비능률, 직무 태만, 직무상의 비행이다. 만약 쿡이 경제적 근거 없이 정치적 압박에 굴복하여 금리를 내린다면 그것이야말로 직무 태만이다. 트럼프는 나중에 경제가 악화되면 바로 그 점을 들어 그녀를 해임할 명분을 얻게 된다. 반대로 그녀가 데이터에 기반하여 원칙을 고수한다면 어떻게 될까? 트럼프의 분노를 살 것이다. 모기지 사기 같은 개인적 비위를 들춰내며 공격받을 것이다.
하지만 상황이 트럼프에게 유리한 것은 아니다. 사실상 진 쪽은 모든 것을 잃게 되는 정면 대결이라고 봐야 한다. 그녀는 법정에서 이렇게 주장할 수 있다. "나는 데이터에 기반하여 물가 안정이라는 연준의 책무를 성실히 수행했다. 대통령의 해임 시도는 부당한 정치적 개입이다." 심지어 그녀가 고평가된 자산에 대해 경고한 것도 전략적이었다. 만약 그녀가 해임되고 트럼프가 임명한 이사가 금리를 내려 자산 거품을 키운 뒤 시장이 붕괴한다면 역사는 그녀가 옳았음을 증명할 것이다.
월스트리트 역시 연준의 독립성을 필사적으로 지키려 했다. 월스트리트에 있어 연준은 단순한 통화 정책 기관이 아니라 게임의 룰 그 자체다. 예측 가능한 연준이 있어야 그들은 배팅을 할 수 있다. 트럼프가 연준을 장악한다는 것은 룰 자체가 독재자의 변덕에 종속된다는 의미였다. 이것은 월스트리트가 가장 싫어하는 것, 즉 불확실성이었다.
그래서 월가는 움직였다. 트럼프가 쿡을 해임하겠다고 위협할 때마다 채권 금리가 올랐다. 이것은 시장의 경고였다. 연준의 정치화는 인플레이션을 의미하고, 인플레이션은 채권 가치 하락을 의미한다. 채권 자경단(Bond Vigilantes)이라 불리는 이 현상은 월가의 무언의 저항이었다. 그들은 직접적으로 트럼프를 공격하지 않았다. 단지 가격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했을 뿐이다.
The Real Stakes: More Than Policy
교묘하게 벌어지고 있는 현 상황은 단순히 금리를 올릴 것인가 내릴 것인가, AI 버블인가 아닌가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 누가 미국 경제의 시스템을 설계할 것인가의 문제다.
Old Money는 안정과 예측 가능성을 원한다. 그들의 시스템은 70년 넘게 작동해왔고, 그 과정에서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New Money는 파괴와 재건을 원한다. 그들이 보기에 Old Money의 시스템은 이미 부패했고 지속 불가능하다. 연준이 찍어내는 돈은 실물 경제와 괴리되었고, 금융 자산의 거품은 이미 위험 수위에 달했다. 이 시스템은 혁신을 억누르고 생산성을 갉아먹고 있었다. 무언가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2025년 11월의 시장 폭락은 이 두 세력 간의 충돌이 만들어낸 충격파로 본다. 표면적으로는 연준 이사의 매파적 발언과 유동성 고갈이 원인이지만 진짜 이유는 더 깊은 곳에 있다. 대부분의 거래가 알고리즘으로 동작하는 현 시장에서 불확실성이 감지된 것이다. 게임의 룰이 바뀔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연준이 정치에 종속될지도 모른다는 우려. 그리고 Old Money의 안전망인 Fed Put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공포.
What Comes Next
이런 전쟁에서는 역사적으로 잃을 것이 없는 쪽이 우세했다. 그리고 트럼프는 이런 상황에서 교묘한 프레임을 잘 짜는 것으로 유명하다. 시장이 폭락하면 그는 그것을 연준 탓으로 돌리고 지지층을 결집시킬 수 있다. 시장이 상승하면, 자신의 개입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으므로 연준의 독립성을 의심하는 프레임을 짤 수도 있다.
반면 월스트리트는 잃을 것이 너무 많다. 시장이 무너지면 그들의 자산도 증발한다. 고객들의 돈도 사라진다. 수수료 수입도 줄어든다. 그들은 결국 타협할 수밖에 없다. 역사적으로도 그래왔다. 금융 자본은 생존을 위해 권력에 순응한다.
게다가 월가는 더 이상 하나가 아니다. 과거에는 JP모건과 골드만삭스로 대표되는 소수의 대형 은행이 월가를 지배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블랙록의 래리 핑크는 ESG를 추구하지만, 동시에 트럼프의 규제 완화도 환영한다. 실리콘밸리의 VC들은 Old Money의 보수적 금융과는 다른 게임을 한다. 크립토 세력은 아예 기존 금융 시스템의 붕괴를 바란다.
트럼프는 이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그는 싸움을 길게 끌 준비가 되어 있다. 연준을 완전히 장악하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조금씩 균형을 무너뜨리고 있다. 리사 쿡을 공격하는 것도 그 전략의 일부다. 그녀를 실제로 해임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연준의 평판을 깎아내리는 것이 목적이다. 대중에게 이런 메시지를 심는 것이다. "연준 이사들도 알고 보면 부패한 엘리트들이다. 그들이 결정하는 금리를 우리가 믿어야 하는가?"
연준의 도덕적 권위가 무너지면 트럼프의 개입은 정당화된다. "나는 부패한 연준을 개혁하고 국민을 위한 정책을 만들겠다." 이것이 트럼프의 최종 목표다.
어쩔 수 없이 극심한 변동성이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혼란의 시기는 항상 그렇다. 구체제가 무너지고 신체제가 들어서는 과도기에는 극심한 변동성이 발생한다. 주가는 폭락과 폭등을 반복할 것이다. 전통적인 금융 지표들은 의미를 잃을 수 있다. 월가에서 통용되던 분석 틀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 시장의 메커니즘 자체가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워렌 버핏의 지혜를 빌려 장기적인 가치를 만들어내는 기업들을 장기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현명한 태도가 필요하다. 파도가 요동칠 때, 파도에 올라탈 수 있어야 한다. 지금은 거대한 파도 앞에 이따금씩 넘실대는 물살들을 마주하는 시기인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