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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ategic surrender of blackrock, pt. 2

strategic surrender of blackrock, pt. 2
Photo by Nicolas HIPPERT / Unsplash

전쟁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적이 후퇴할 때다. 후퇴하는 것처럼 보이는 군대가 실제로 후퇴하고 있는지, 아니면 적을 유인하고 있는지를 구분하는 것은 전장의 안개 속에서 거의 불가능하다. 나폴레옹은 이 원리를 누구보다 잘 알았고, 그래서 아우스터리츠에서 의도적으로 우익을 약화시켜 적의 공격을 유도한 뒤 중앙을 돌파했다. 후퇴의 외피 속에 공격의 설계가 숨어 있었다.

지난 글에서 나는 블랙록 TCPC의 2026년 1월 대규모 상각이 실패의 고백이 아니라 치밀하게 설계된 전략적 투항(Strategic Capitulation)이라고 분석했다. NAV를 19% 떨어뜨리고, 레버리지를 규제 한도 이상으로 폭등시킨 뒤, 미리 확보해 둔 NAV 미만 유상증자 권한으로 깨끗한 2026년을 시작하며 자본을 재편하려는 큰 그림. 기존 주주의 희생 위에 새로운 자본의 이익이 쌓이는 구조.

1월 30일 5달러대이던 TCPC는 3달러 중반대로 다시 내려왔다

그로부터 두 달이 지났다. 블랙록의 후퇴는 계속되고 있다. 한달 여만에 주가는 20%가까이 추가 하락했다. 배당이 삭감되었고, 소송이 접수되었고, 매크로 경제에서는 프라이빗 크레딧 섹터 전체가 흔들리고 있다. 표면만 보면 블랙록은 궁지에 몰린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아우스터리츠의 교훈을 기억해야 한다. 후퇴가 깊을수록, 반격의 에너지는 커진다.

Controlled Demolition Continues

지난 글에서 분석한 1월 23일의 8-K 공시는 건물의 1차 폭파라고 비유할 수 있다. 이번 2월 27일에 발표된 연간 실적은 2차 폭파다.

숫자의 표면은 나쁘지 않아 보인다. 순투자수익(NII)은 주당 $0.34로, 기존 배당 $0.25를 커버했다. 운영 엔진만 놓고 보면 아직 돌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 아래의 지형이 문제다. Q4 단일 분기에 실현 손실(Realized Losses)과 미실현 손실(Unrealized Losses)이 합산 1억 4천만 달러. 순투자수익이 벌어다 놓은 것을 자산 가치 훼손이 몇 배로 갉아먹은 것이다. 손익계산서는 버텼지만, 대차대조표가 무너지고 있다.

그리고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비이자수익(Non-Accrual) 투자의 이중 구조다. Non-Accrual이란 차입자가 이자를 정상적으로 지급하지 못해, 운용사가 더 이상 해당 대출에서 이자 수익을 인식하지 않는 상태를 뜻한다. 사실상 부실 또는 부실 직전 대출이다.

이 비율을 측정하는 기준이 두 가지 있다. 공정가치(Fair Value) 기준과 취득원가(Cost Basis) 기준이다. 공정가치 기준으로 Non-Accrual 비율은 3.5%에서 4.0%로 소폭 상승했다. 얼핏 관리 가능한 수준이다. 하지만 취득원가 기준으로는 7.0%에서 9.7%로 급등했다.

이 괴리가 드러내는 구조는 이렇다. 블랙록은 이미 부실 자산의 장부가를 대폭 감액(Write-down)해 놓았다. 100을 투입한 대출의 공정가치를 40으로 낮춰 놓으면, 공정가치 기준 비율의 분자와 분모가 동시에 줄어들어 비율 자체는 '예쁘게' 나온다. 하지만 취득원가 기준 (즉 원래 투입한 자본 대비) 으로 보면 부실 규모는 전혀 줄지 않았고, 오히려 가속되고 있다. 감액은 문제를 해결한 것이 아니라 측정 기준을 바꿔 놓은 것이다.

Q3 실적 발표 때 CEO Phil Tseng은 Non-Accrual 비율이 2024년 말 5.6%에서 3.5%로 줄었다며 "전략이 먹히고 있다"고 했다. 그 '전략'의 실체는 부실 채권이 상환되거나 정상화된 것이 아니라, 장부가를 더 깊이 깎아서 공정가치 기준 비율을 낮춰 보이게 만든 것이었다. 회계적 정리(Accounting Cleanup)와 실질적 회복(Fundamental Recovery)은 전혀 다른 사건이다. 전자는 장부 위의 숫자를 재배치한 것이고, 후자는 실제 현금이 돌아온 것이다. 경영진은 이 둘을 의도적으로 혼동시켰다. Q4에 1억 4천만 달러가 한꺼번에 터진 것이 이 차이를 증명했다. 감액해 둔 자산들이 결국 실현 손실로 전환되면서, 숫자 위의 화장이 벗겨진 것이다.

Opening the Black Box

여기서 당연한 의문이 제기된다. 이 모든 것이 의도된 설계라면, 그것은 사기가 아닌가?

2월 초, 증권 집단소송이 접수됐다. 핵심 주장은 간결하다. TCPC가 자산을 적시에 적절하게 평가하지 않았고, 그 결과 NAV가 과대 평가되었으며, 경영진의 "잘하고 있다"는 발언들이 투자자를 오도했다는 것이다. Class Period는 2024년 11월부터 2026년 1월까지, "회복 중"이라 말하던 기간 전체를 겨냥한다.

하지만 이 소송이 블랙록을 궁지에 몰 것이라고 보는 것은 구조를 거꾸로 읽는 것이다. 증권 집단소송은 대부분 합의로 끝난다. 합의가 성립되는 순간, 2024~2025년의 밸류에이션 논란은 법적으로 봉인된다. 블랙록은 합의금이라는 비용을 치르지만, 그 대가로 새 자본에게 제시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것을 얻는다 - 법적 리스크가 청산된 깨끗한 장부.

Q4 어닝콜에서 경영진은 "밸류에이션 정책에 변화가 없었다"고 강조했다. 기술적으로는 맞다. 하지만 문제는 정책이 아니라 정책의 적용 시점이다. 같은 정책을 언제, 어떤 강도로 적용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완전히 달라진다. 이 '재량(Discretion)'의 영역이야말로 사모 대출의 구조적 아킬레스건이다. 공개 시장에서는 시장이 가격을 매긴다. 사모 대출에서는 운용사가 스스로 가격을 매긴다. 평온한 시기에는 이 차이가 보이지 않지만, 위기가 오면 신뢰의 근본이 흔들린다.

소송은 이 신뢰의 균열을 드러냈다. 그러나 동시에, 그 균열을 메우는 수단이기도 하다.

The Wider Earthquake

TCPC의 소송을 개별 사건으로 볼 수 없는 이유는, 2026년 봄 프라이빗 크레딧 섹터 전체가 지각변동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2조 달러 규모의 프라이빗 크레딧 시장이 2008년 이후 가장 험난한 국면을 통과하고 있다. 블랙스톤, 모건 스탠리, 클리프워터 등 대형 운용사들이 잇따라 환매를 제한하고 있다. 반유동성(Semi-liquid) 펀드라는 이름으로 리테일 투자자에게 판매된 상품들이 약속했던 유동성을 제공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세 가지 구조적 균열이 동시에 진행 중이다.

첫째, AI가 소프트웨어 대출의 근간을 뒤흔들고 있다. 프라이빗 크레딧 포트폴리오의 약 4분의 1이 소프트웨어·기술 섹터에 집중되어 있다. SaaS 기업들의 반복 매출과 높은 마진이 '안전한 대출'의 근거였는데, 생성형 AI가 이 경쟁 해자를 침식하면서 그 안전의 전제 자체가 무너지고 있다.

둘째, 차입자들이 현금 대신 추가 채무로 이자를 갚는 PIK(Payment-in-Kind)가 만연하고 있다. 이자를 갚는 대신 빚을 늘리는 것이니, 사실상 부실의 시간벌기다. TCPC의 경우 Q4에 PIK 비중이 순투자수익의 10.9%에 달했다. 업계에서 PIK 10%는 '하드 디폴트 임박'의 경험적 지표로 통한다.

셋째, 밸류에이션 자체에 대한 시장의 불신이 임계점에 도달했다. DOJ가 프라이빗 포트폴리오의 "창의적 평가(Creative Marks)"에 대해 경고를 발했고, SEC가 중소형 신용평가사 조사에 착수했다. 공개 BDC들은 평균적으로 장부가의 80%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다. 시장이 운용사의 자체 밸류에이션을 20% 할인해서 보고 있다는 뜻이다.

지난 글에서 예측했던 "규제의 폭풍"이 현실이 되고 있다. 중소형 신용평가사 정리, 등급 강등에 따른 강제 매도, 시장에 쏟아지는 매물. 프라이빗 크레딧 시장의 '엔드 오브 이노센스(End of Innocence)'가 시작된 것이다.

The Paradox

블랙록은 2025년 6월에 NAV 미만 유상증자 권한을 미리 확보했다. 2026년 1월에 모든 부실을 한꺼번에 털어냈다. NAV를 바닥으로 끌어내리고 레버리지를 규제 한도까지 올려서 "자본 확충이 절실하다"는 명분을 만들었다. 이 모든 것이 2026년 6월 권한 만료 전에 유상증자를 단행하기 위한 포석이다.

두 달이 지난 지금, 블랙록은 실제로 무엇을 했는가?

2월 9일, 만기 도래한 채권 3억 2,500만 달러를 상환했다. 가장 급한 리파이낸싱 리스크를 제거한 것이다. Q4에 51만 주를 평균 $5.84에 자사주 매입했다. 시장에 떠도는 유통 주식 수를 줄이면서, 향후 유상증자 시 희석 효과를 부분적으로 상쇄하는 포석이다. 포트폴리오의 1순위 담보 대출 비중을 83.6%에서 87.4%로 끌어올렸다. 부실을 털어내면서 동시에 남은 포트폴리오의 품질을 높였다. 총 유동성은 5억 7천만 달러를 유지하고 있다.

패턴이 보이는가? 부실 인정 → 배당 삭감 → 채무 상환 → 포트폴리오 정리 → 유동성 확보. 이것은 추락하는 회사의 발버둥이 아니라 전장을 정리하는 군대의 움직임이다. 불필요한 진지를 포기하고, 보급선을 확보하고, 정예 병력을 결집시킨 뒤, 결정적 순간에 투입하기 위한 준비.

소송조차 이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 소송이 합의로 끝나면 블랙록은 합의금이라는 비용을 치르지만, 동시에 "과거의 모든 문제가 법적으로 종결되었다"는 클린 슬레이트(Clean Slate)를 얻는다. 기존 주주에게 합의금을 나눠주고, 새로운 자본으로 새 출발하는 것이다. 소송은 블랙록에게 위기가 아니라 과거 청산의 마지막 퍼즐 조각이 될 수 있다.

The Austerlitz Moment

나폴레옹이 의도적으로 우익을 약화시켰을 때, 적군의 장군들은 프랑스 군이 무너지고 있다며 환호했다. "프랑스군이 무너지고 있다!" 그들은 약한 우익에 병력을 집중시켰고, 그 순간 나폴레옹의 중앙군이 적의 전선을 관통했다. 후퇴는 유인이었고, 약함은 함정이었다.

아우스터리츠 전투

블랙록의 2025~2026년 행보를 이 프레임으로 다시 읽어보자.

NAV 19% 급락은 프라텐 고지에서의 후퇴다. 배당 32% 삭감은 우익의 약화다. 소송과 섹터 위기는 전장의 안개다. 이 모든 것이 적 - 시장의 패닉과 경쟁자들의 취약성 - 을 유인하고 있다. 그리고 3억 2,500만 달러 채무 상환, 5억 7천만 달러 유동성 확보, 포트폴리오 품질 강화는 중앙군의 결집이다.

아직 결정적 돌파 (유상증자와 대규모 바닥 매수 )는 시작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돌파를 위한 모든 조건은 이미 갖춰졌다. NAV 미만 발행 권한은 2026년 6월까지 유효하다. 유동성은 확보되어 있다. 장부는 깨끗해졌다. 경쟁자들은 환매 압력과 등급 강등으로 허덕이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지겨운 파산 소식이지만, 준비된 자본에게는 10년 만에 찾아온 가장 거대한 기회의 문이 열리고 있다. 단지 그 문을 여는 열쇠가 기존 주주들의 눈물로 만들어졌을 뿐이다."

두 달이 지난 지금, 그 문은 더 넓게 열리고 있다. 소송이 접수되었고, 배당이 삭감되었고, 프라이빗 크레딧 섹터 전체가 진동하고 있다. 기존 주주들의 눈물은 더 깊어졌고, 그만큼 문 뒤에 숨겨진 기회의 크기도 더 커졌다.

블랙록은 이 문을 안쪽에서 열 수 있는 존재다. 그들은 열쇠를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열쇠를 이미 만들어 놓고 문이 완전히 닫히기를 기다리고 있다. 문이 닫히는 소리를 공포라 부르는 자들이 있고, 기회라 부르는 자들이 있다.

역사적으로 가장 거대한 부의 이전은 항상 이 두 소리를 구분할 수 있었던 자들에 의해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