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echnological republic
"the end point of mankind's ideological evolution and the universalization of Western liberal democracy as the final form of human government"
- Francis Fukuyama
서구 세계는 지난 30년간 하나의 환상 속에서 살아왔다.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선언한 "역사의 종말"이 그것이다. 자유 민주주의가 인류 정부의 최종 형태라는 이 가정은 서구 엘리트들에게 깊은 안도감을 주었다. 더 이상 실존적 위협은 없을 것이며, 남은 일은 관료적 절차를 통해 번영을 관리하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중국은 기술적으로 정교한 권위주의 체제를 구축하며 부상했고, 우크라이나에서는 고강도 전쟁이 돌아왔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지정학적 변화가 단순히 권력의 재배치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다른 세계관의 충돌이라는 점이다. 현재의 글로벌 경쟁은 반도체와 알고리즘을 넘어서, 인간과 권리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에 대한 전쟁으로 보아야 한다.
The Source Code of Rights
미국 독립선언서의 문장은 전 세계 AI 거버넌스의 차이를 설명하는 열쇠를 담고 있는 것 같다.
"that all men are created equal, that they are endowed by their Creator with certain unalienable Rights, that among these are Life, Liberty and the pursuit of Happiness."
- Declaration of Independence
"모든 인간은 창조주로부터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받았다"는 이 정식화는 명확하고 배타적이다. 권리는 정치 이전에 존재한다. 국가가 형성되기 전에 이미 개인에게 속해 있으며, 국가의 유일한 정당성은 이러한 선재하는 권리를 확보하는 능력에서 나온다.
이것이 바로 "자연법" 전통이다. 권리가 신으로부터 주어진 것이라면, 그것은 개인의 속성이지 집단이 수여한 선물이 아니다. 다수의 효용을 위해 폐기될 수 없고, 개인의 동의로도 포기될 수 없다. 미국의 건국자들이 주장한 권리는 정부에 대항하는 권리였다. 이는 강력한 함의를 갖는다. AI의 맥락에서, 이는 알고리즘 개입에 높은 장벽을 만든다. 개인의 데이터는 형이상학적 명령에 의해 그들에게 속하며, 국가의 시선—판옵티콘—은 신성한 계약의 잠재적 위반으로 간주된다.
대조적으로, 독일 기본법과 유럽의 법적 프레임워크로 대표되는 대륙의 전통은 다른 출발점을 갖는다. "실정법" 체계에서 권리는 공동체와 국가의 합의에 의해 확립된다. 나치의 무법 상태에 대한 역사적 반작용으로, 유럽은 인간 존엄성을 보호하기 위해 국가가 권리를 성문화한다는 모델을 채택했다. 권리는 사회 계약의 함수가 되었고, 국가는 그 존엄성을 침해할 수 있는 발언과 기술을 규제할 적극적 의무를 갖게 되었다.
"Die Würde des Menschen ist unantastbar. Sie zu achten und zu schützen ist Verpflichtung aller staatlichen Gewalt."
(인간의 존엄성은 훼손할 수 없다.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보호하는 것은 모든 국가권력의 책무이다.)
- Grundgesetz(독일 기본법)
이 철학적 차이는 학문적 각주에 그치지 않는다. 이것은 EU의 강력한 AI 규제, 유럽이 "안전"과 "공정성"을 원초적 자유보다 우선시하는 이유, 그리고 미국이 "서부 개척 시대"식 기술 혁신을 허용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미국의 전통은 창조주가 개인에게 위험한 지식을 다룰 수 있는 주체성을 부여했다고 가정하기 때문이다.
When Consensus Becomes Reality
카프가 제기하는 비판 중 하나는 거대언어모델 시대에 "합의 기반 권리"로 이동하는 것의 위험성이다. LLM은 정의상 통계적 합의의 엔진이다. 방대한 인간 텍스트 말뭉치에서 도출된 확률을 기반으로 다음 단어를 예측한다. 만약 권리가 "다수가 만들기로 선택한 것"으로 정의된다면, 인터넷으로 훈련된 AI는 궁극적인 실정법적 판사가 된다. 그것은 훈련 데이터의 "평균적인" 도덕성을 강요할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기술적 문제가 아니다. "권리"가 단지 다수가 현재 동의하는 것이라면, AI는 그 합의를 조작하도록 설계될 수 있다. 사실상 실시간으로 인권의 "소스 코드"를 다시 쓸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의 자연법 전통은 이러한 표류에 대한 확고한 저지선 역할을 한다. AI 모델의 통계적 확률이 다르게 시사하더라도, 일부 권리는 양도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Ontology as Constitution
이러한 맥락을 고려하면, 카프가 이끄는 팔란티어의 핵심 제품이 "존재론(Ontology)"에 기반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된다 철학에서 존재론은 존재에 대한 연구, 즉 실제로 무엇이 존재하는가에 대한 것이다. 팔란티어의 소프트웨어 맥락에서 존재론은 현실 세계의 엄격하고 구조적인 지도다. 그것은 객체—전차, 군인, 보급로, 은행 계좌—와 그들 사이의 관계를 정의한다.
이는 결정론적 프레임워크다. 존재론 내의 객체는 존재하거나 존재하지 않는다. 좌표 X에 있거나 없다. 전차 존재의 "확률"은 없고, 오직 그것을 확인하는 데이터만 있다. 이 접근법은 언어의 유동성을 거부하고 원자와 실세계 항목의 견고함을 선호하는 구조주의적, 실재론적 철학을 반영한다.
카프의 전략적 통찰은 전투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합성에 있다는 것이다. 기술 공화국은 인간이 LLM이라는 "부드러운(Soft)" 인터페이스를 통해 존재론의 "단단한(Hard)" 사실들을 심문할 수 있는 시스템을 요구한다. LLM은 번역가 역할을 하지만, 존재론은 AI의 출력을 제약하는 현실의 불변하는 구조, 즉 "헌법" 역할을 한다.
카프가 옹호하는 정치 구조는 바로 이 기술적 설계와 그대로 닮아 있다. “부드러운” 민주적 인터페이스—즉, 끊임없이 변하는 여론과 다수결의 정치—가 “단단한” 헌법적 구조 위에서만 안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연법이라는 흔들리지 않는 존재론이 없다면, 민주주의라는 LLM은 결국 대중의 순간적 감정에 휘둘려 중우정치로 무너지고 만다.
카프는 서구, 특히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하나의 “패배와 함께 사는 매뉴얼”을 수입했다고 비판한다. 프랑크푸르트 학파를 비롯한 비판 이론은 홀로코스트와 전쟁의 깊은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태어났다. 그 철학의 핵심은 권력, 민족주의, 군사적 미덕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 즉 “다시는 안 된다(Never Again)”는 방어적 태도였다.
그런데 승전국이었던 미국이 이 패배자의 철학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미국 엘리트들은 자신들의 권력과 군사력을, 아도르노가 과거 독일 국방군을 바라보던 것과 같은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게 되었다. 카프는 이것을 명백한 범주 오류라고 지적한다. 미국은 나치 독일이 아니다. 미국은 나치 독일을 물리친 기술 공화국이다. 패배자의 트라우마를 승자의 통치 철학으로 삼는 것은 결국 서구 스스로를 심리적으로 무장 해제시키는 결과만 낳을 뿐이다.
Civil-Military Fusion vs. Civil-Military Confusion
자연법과 실정법 차이에서 기인한 철학적, 사회학적 차이는 지정학적으로 기술 거버넌스의 두 가지 뚜렷한 모델 간의 충돌로 나타난다. 중국 공산당은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완벽하게 이해했다. 토대—경제 생산과 기술—가 상부구조를 결정한다는 것을. 이를 이해한 CCP는 모든 민간 기술 발전이 국가의 정치적, 군사적 목표에 직접 기여하도록 보장하는 "민군 융합"을 강제했다.
이는 단순히 국방 계약에 관한 것이 아닌, 가치에 관한 것이다. 중국의 AI 모델은 "사회주의 핵심 가치"를 반영하도록 명시적으로 훈련된다. 규제는 생성형 AI가 "국가 권력의 온전함을 옹호"하고 "분리주의 선동을 삼가야" 한다고 요구한다. 이는 전체주의적 극단으로 치달은 실정법이다. 국가가 현실을 정의하고 AI가 이를 강화한다.
대조적으로 미국은 "민군 혼란"을 겪고 있다. 토대—실리콘 밸리—는 상부구조—워싱턴 D.C.—와 분리되었다. 이는 부분적으로 자신들을 미국 시민이 아닌 "세계 시민"으로 여기는 기술 엘리트들의 글로벌리스트 이데올로기 때문이다.
이는 거대한 전략적 취약성을 만든다. 중국이 AI 자원을 극초음속 미사일과 사회 통제에 집중하는 동안, 미국 기술 거대 기업들은 광고 클릭 수익과 소비자 참여 최적화에 몰두한다. 심지어 2010년대에 주요 미국 기술 기업들은 베이징에 연구소를 유지하면서도 펜타곤의 AI 프로젝트 협력을 거부했다. 이러한 "코더들의 반역"이 바로 카프의 기술 공화국이 되돌리고자 하는 것이다.
The Technological Republic
카프가 꿈꾸는 기술 공화국은 기술 부문과 국가 사이에 새로운 합의를 맺자는 제안이다. 17세기 베스트팔렌 조약이 유럽의 종교 전쟁을 끝내며 주권 국가 체제를 세웠듯, 이제는 생존이라는 공동의 이익을 바탕으로 실리콘 밸리와 워싱턴이 손을 잡아야 한다는 뜻이다. 중국처럼 국가가 기술을 억압적으로 통제하라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존립을 걸고 협력하자는 파트너십이다.
21세기의 정치적 주권은 결국 생산 주권에서 나온다. 자신의 무기를 스스로 코딩하지 못하는 나라는 속국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더 이상 학위형 엘리트의 법률적·관료적 사고에 갇혀 있어선 안 된다. 대신 실리콘 밸리의 엔지니어링 정신—빠르게 반복하고, 경험으로 배우며, 위험을 감수하는 태도—을 받아들여야 한다. 안전지대를 찾고 끝없는 합의를 추구하는 대신, 아이디어가 격렬하게 충돌할 때 비로소 진보가 나온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무엇보다 기술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기술은 그것을 만든 사람의 가치를 그대로 담는다. 따라서 서구의 기술은 당당하게 서구적이어야 한다. 이것이 카프가 말하는 “기술 민족주의”의 핵심이다.
하지만 그는 Hard Power만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강조한다. 아무리 강력한 기술도, 그 위에서 실행되는 문화적 소프트웨어—즉 Soft Belief—가 없으면 공허할 뿐이다. 서구의 삶의 방식은 결점이 많지만, 권위주의적 대안보다는 여전히 우월하며 목숨 걸고 지킬 가치가 있다는 확신이 바로 그 소프트웨어다.
카프는 오늘날 서구 문화의 중심에 공허가 자리 잡고 있다고 비판한다. “신이 주신” 권리가 어느새 “소비자 선호” 정도로 세속화되면서, 시민들은 더 이상 공동체를 위해 희생하려 들지 않는다. 기술 공화국은 맹목적 애국주의가 아니라, 고대 로마 시민들이 가졌던 의무감과 책임감을 되살린 새로운 애국심을 요구한다.
그는 새뮤얼 헌팅턴의 냉엄한 현실주의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서구는 아이디어의 우월성 때문이 아니라, 조직화된 폭력을 적용하는 데 탁월했기 때문에 세계를 제패했다.”
부드러운 자유주의가 잊고 싶어 하는 바로 그 진실이다. AI 시대에 조직화된 폭력은 이제 알고리즘적이다. 적보다 빠르게 킬 체인을 돌리고, 더 정밀하게 타격하는 능력이다. 만약 서구가 이 Hard Power의 우위를 잃는다면, 인권과 민주주의 같은 Soft Belief는 역사의 각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그래서 기술 공화국은 무력 사용을 다시 정당화하는 외침이기도 하다. 학위형 엘리트는 서구로 하여금 자신의 힘에 대해 끝없이 죄책감을 느끼게 만들었고, 그 진공을 러시아와 중국이 기꺼이 채우고 있다. 물리적 세계의 단단한 현실에 익숙한 실무형 계급은 이미 알고 있다. 평화는 우월한 화력으로 유지된다는 사실을.
Safe means that the other person is scared. That's how you make someone safe.
- Alex Karp
우리는 이제 국가가 “알고리즘 리바이어던”이 되는 미래로 나아가고 있다. 이제 질문은 다음과 같이 바뀐다. 그 리바이어던이 자연법이라는 성약에 구속될 것인가, 아니면 실정법이라는 효용에만 구속될 것인가. 카프의 작업은 미국의 자연법 전통만이 이 거대한 힘을 담아낼 수 있는 유일한 철학적 틀임을 보여준다. 유럽과 중국의 실정법 전통은 너무 유연해서, 알고리즘이 “효율적”이라고 판단하는 순간 개인의 권리를 집단의 의지에 굴복시키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