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nking is becoming a luxury good
짧은 글이라 하더라도 시간을 내어 스스로 생각하고, 이를 구조화하여 정리하는 글쓰기를 하고 있다. 문장이 조금 어색하더라도 스스로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글을 작성해 완성해 내는 것이 이 글쓰기의 골자다.
이는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기 위해서이고, 스스로 생각하는 힘이 이제는 아무나 가질 수 없는 희소 자원이 되어가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사회 구성원의 모두가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이었던 적은 없었기에 생각하는 힘은 언제나 역사적으로 희소한 자원이었지만, 이제는 기존에 생각하는 힘을 갖고 있었던 사람들에게서조차 이를 쉽게 앗아갈 수 있다는 점에서 그 희소성의 크기는 훨씬 더 켜졌다. 의식적으로 싸워 이겨내지 않으면 이를 지켜낼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쓰기를 통해 기르고자 하는 것이 스스로 생각하는 힘, 즉 사고하는 힘이라면, 먼저 "사고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의하고, 이 정의에 빗대어 "사고를 잘 한다"는 것을 정의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사고의 본질』의 저자 더글라스 호프스태터는 사고를 끊임없는 비유 만들기(analogy-making)와 범주화의 과정으로 정의한다. 그에 따르면 사고란 과거의 경험과 현재 상황을 연결하는 비유를 통해 개념을 지속적으로 범주화하는 활동이다.
No thought can be formed that isn't informed by the past; or, more precisely, we think only thanks to analogies that link our present to our past. - Hofstater. Surfaces and Essesnces
예를 들어, "민주주의는 국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라는 주제에 대해 사고한다고 가정했을 때, 우리의 뇌는 다음과 같은 비유와 범주화 과정(물론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을 것이다.)을 병렬적, 혹은 순차적으로 거치면서 결론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 과거 경험과 현재 상황의 연결
- 미국과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각각 어떠했는가?
- 민주주의가 아니었던, 스탈린의 소련과 히틀러의 독일은 어떠했는가?
- 복잡한 상황들을 이해하기 위한 범주화
- 민주주의의 핵심 요소는 무엇인가?
- 자유는 어떻게 범주화될 수 있는가? (정치적 자유, 경제적 자유)
- 국가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것은 어떻게 범주화 될 수 있는가?(문화적, 사회적)
- 구조적 유사성 탐지
- 민주주의의 구조가 생물체의 면역체계와 구조적으로 유사하지 않은가?
- 독재에서 민주주의로 전환되는 구조가 상변화, 임계점과 유사하지 않은가?
즉, 우리는 사고할 때 떠올릴 수 있는 과거의 구체적 경험들을 현재 상황과 비유하고, 이를 구성하는 복잡한 요소를 다양한 층위들의 이해 가능한 범주로 나누며 비유와 유추를 통해 구조적 유사성을 찾는 과정을 거친다.
이와 같은 사고의 정의에 빗대어보면, 사고를 "잘 한다"는 것도 어렵지 않게 정의내릴 수 있다. 사고를 잘 하기 위해서는 사고해야 하는 어떤 대상이 주어졌을 때, 떠올릴 수 있는 사례가 충분히 많아야 한다.
그런데 어떤 대상으로부터 특정한 사례를 떠올리기 위해서는 그 대상과 사례와의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사고의 정의에 의하면, 오직 비유와 유추를 통해서만 어떤 대상으로부터 특정 사례를 환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사고를 잘 하기 위해 어떤 개념에 대해 떠올릴 수 있는 사례가 충분히 많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서로 달라 보이는 범주들 사이에서의 유사성을 발견하는 능력, 즉 비유와 유추 능력이 뛰어나야 한다.
그렇다면 비유와 유추 능력은 어떻게 길러지는가? 서로 달라 보이는 범주들 사이를 비유와 유추를 통해 연결해내기 위해서는 자유자재로 다양한 층위를 넘나들며 다양한 기준으로 재 범주화를 할 수 있는 유연함(remarkable fluidty)이 필요하다.
결국 사고를 잘 하는 사람은, 하나의 사고할 대상이 주어졌을 때, 그 대상을 끊임없는 재 범주화를 통해 해체하고, 해체한 부분을 이리저리 조합해서 다시 범주화 한 뒤, 해당 범주에 속할 만한 것들을 비유와 유추를 통해 끌어모아 수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검토할 수 있는 사람인 것이다.
이제 사고한다는 것을 정의했고, 이 정의를 바탕으로 사고를 잘 한다는 것도 정의했으니, 사고를 잘 하기 위해 길러야 하는 것도 보다 명확해졌다. 끊임없는 글쓰기라는 행위를 통해 지켜내야만 하는 사고의 능력은 결국 "범주화와 유추"임이 드러났다. 민주주의라는 개념을 분해하고 조립해 물리학과 같은 범주로 묶을 수 있는 능력, CPU의 동작 방식을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방식과 같은 범주로 묶어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만 한다.
이렇게 길러진 사고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구체적으로 탐구할 수 있게 돕는 도구이자, 한 인간의 "관점(perspective)"을 형성하는 도구다. 스스로 만든 이야기가 쌓이면 관점이 생기고 이 관점은 앞으로 마주할 수많은 이야기들을 이해하고 판단하고, 수용할지 거부할지를 결정하는 기준점이 된다.
충분한 사고를 통해 형성된 이야기가 없어 자신만의 관점이 없는 사람에게는 기준점도 없고, 따라서 어떤 이야기에 대해 반박할 수 있는 능력도 없다. 스스로 어떤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만들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어떤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 이야기에 어떤 다른 길들이 있을 수 있었는지를 생각할 수가 없다. 그렇기에 그럴듯한 이야기와 자신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논리성만 보인다면 이를 그대로 수용한다. 더 나아가서는 그 이야기가 마치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인 것처럼 생각하며 이를 갈망하기도 한다.
인지 능력을 다른 도구들에 위임(Cognitive Offloading)하고 만들어진 이야기가 그럴듯한가만을 판단하려는 유혹에 빠지기 쉬운 시대다. 너무 빠르게 세상이 변하다 보니, 차분히 앉아 무거운 주제들에 대해 결론이 나지도 않을 이야기를 만드느니, 새로운 인풋들을 빠르게 흡수해 뭐라도 만들어보는 것이 더 가치있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섬세하고 잘 조직된 이야기가 가진 힘은 크다. 스스로 사고하지 못하는 사람은 스스로 사고하는 사람이 만들어 낸 이야기 속에서만 존재하게 되며, 스스로 사고하는 사람이 꾸는 꿈의 지극히 일부만을 꾸게 된다. 나는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
결국, 스스로 한 생각이 쌓이면 관점이 됩니다. 남의 좋은 관점을 아무리 많이 보고 들어도 그것이 그대로 나의 관점이 되는 일은 없어요. 관점엔 반드시 내가 개입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불안함을 느끼는 건, 앞으로 벌어질 일에 내가 어떤 식으로 움직일지를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자신만의 관점이 잘 정립된 사람은 아무래도 덜 불안하게 마련입니다. 변수가 생겨도 나만의 기준점이 있고, 그래서 내가 어떻게 움직일지를 어느 정도는 예상할 수 있으니까요.
- 인생의 해상도, 유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