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에 여러 일을 하는 인간

Posted by sckimynwa on June 26, 2023 · 12 mins read

기본적으로 나는 동시에 여러 일을 하는 인간이다. 원래도 한번에 두어개의 일을 같이 진행하는 것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주위를 둘러싼 여러 상황들로 인해 여러 가지 일들을 동시에 할 수밖에 없었던 상반기를 보내면서 더 그런 인간이 된 것 같다.

이번 상반기. 즉 대략 2월 정도부터 6월 말까지 동시에 했었던 일들을 정리해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 4학년 1학기 15학점을 수강하면서 데이터 통신, 하드웨어 시스템 설계, 인간컴퓨터 상호작용을 공부했다 (4전공 + 졸업을 위한 1교양)
  • 산업기능요원 시절부터 계속 다니고 있는 QANDA에서 프론트엔드 엔지니어로 풀타임 근무했다.
  • 한 학기동안 120여권의 책을 읽고 이를 여러 계층에 걸쳐 정리했다.
    • 첫 번째 계층에서는 인상깊은 구절들을 인스타그램 계정(@bookreader_sckim)에 업로드 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 두 번째 계층에서는 그 중에서도 더 인상깊은 내용들을 내 생각을 덧붙여서 내 주위의 똑똑하고 훌륭한 사람들이 모여있는 여러 채널들에 공유하면서 피드백을 받는 방식으로 내용을 더 입혔다.
    • 마지막 세 번째 계층에서는 그 중에서 하나로 엮을 수 있는 내용들을 모아 짧은 글의 형태로 정리해서 블로그에 포스팅하는 방식으로 내용을 정리했다.
  • 친구들과 이런저런 조그만 단위의 프로젝트들을 하면서, 진행하는 N개의 프로젝트들과 팀빌딩, 그리고 각종 재정적인 문제나, 행정적인 이슈들을 논의했다.
  • First Penguin Crew의 일원이 되어 정기적으로 미팅을 나가 크루 멤버와 훌륭한 게스트 분들과 함께 비즈니스와 가치 평가, 그리고 정말 돈을 벌 수 있는 사업 방식에는 어떤 것들이 있고, 어떤 시도들을 각자 하고 있는지에 대해 논의했다.
  • 그 외에 개인적으로는 LLM 스터디와 관련 논문 리딩을 계속했고, 유의미한 내용들은 친구들이나, 회사에 Tech Talk의 형식으로 공유했다. (하지만 AI쪽 논문만 읽은 것은 아니다.)
  • 기술 & 인문학 블로그를 정기적으로 작성했다.
  • 콴다에서 진행하는 Content Platform의 전반적인 시스템의 이해를 높이기 위해 Spring / Kotlin / Armeria 기반의 백엔드 공부를 사내에서 가장 친한 백엔드 개발자 분과 정기적으로 수행하고 있고
  • 최근 한 출판사로부터 Web Development에 대한 저서 출간 제의를 받아서 출판을 위한 여러 작업들도 준비하고 있다.

물론 시간이 더 지나고 났을 때 이런 많은 일들을 동시에 처리하면서 극도의 효율을 추구하는 방식에 대해 회의가 들거나 이 방법이 내포하는 근본적인 결함이 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여러 가지를 동시에 처리하는 것이 얼마나 오래 지속 가능한 방식인지에 대해서도 아직까지는 의문이 있기도 하다.

그러나 내 개인적인 철학에 의하면, 이런 상황에서 우려되는 여러 걱정들로 인해 새로운 방식을 시도하지 않는 것은 새로운 방식을 시도했다가 실패하는 경우보다 훨씬 더 이득이 적다. 그리고 이러한 방식이 결과적으로 좋지 못한 것으로 밝혀졌을 때의 하방 압력은 (내가 이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 큰 레버리지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크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지금 이 시점에서 동시에 여러 일을 하는 인간인 나에 대한 최대한의 객관적인 성찰을 해보며, 여기에서의 인사이트들을 논해보고자 한다.

문제를 좋아하는 인간

나는 문제를 좋아한다.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좋아하지만 어느 시점부터 문제를 해결하는 것 보다 문제 그 자체를 더 좋아하게 된 것 같다. 아직 명확한 이유를 스스로 찾지는 못했지만, 아마도 좋은 문제를 찾고 정의내리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가치들을 좋아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좋은 문제를 찾기 위해서는 인간이 무엇을 욕망하는지, 그리고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해 꽤나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이것이 필연적으로 주관적인 성격을 띄기 때문에 더 그런 것 같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을 바탕으로 자신이 바라는 이상향을 명확하게 정의하고 그것을 현실과 냉철하게 비교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튀어나온다. 이는 이전의 글 문제에 관한 가벼운 고찰에서 언급한 바 있듯, 문제를 이상과 현실의 차이(Diff)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보는 관점이다.

문제에는 문제를 제시한 사람의 이상향과 현실인식이 그대로 묻어나며, 여기에는 그 사람이 생각하는 가치와 인간에 대한 이해가 드러난다. 개인적으로는 문제로부터 이런 것들을 역산하는 것을 좋아하며, 그렇게 해서 역산된 이해들을 기존의 내 이해들과 비교하는 과정을 통해 내가 생각하는 이상향과 현실인식을 다듬을 수 있다고 믿는다.

따라서 내가 회사를 다니는 이유는 커리어를 쌓고 어디어디에 얼마나 있었다라는 경력기술서의 한줄을 추가하기 위함이 아니며, 문제를 정의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현실적인 것들을 경험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문제가 많고 때로는 엉망진창인 것처럼 보이는 상황을 좋아하며 그것으로부터 발산할 수 있는 여러 가능성들을 Random Walk 해 볼 수 있는 상황을 즐긴다.

문제를 제시하고 해결하기 위한 탁월함

궁극적으로는 나는 인류에게 유익한 큰 문제를 제시하고 이것을 풀어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 큰 문제는 혼자 풀 수 없기 때문에 정말 탁월한 사람들과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탁월한 사람들을 곁에 두기 위해서는 우선 내가 먼저 탁월해져야 한다고 믿는다.

그렇다면 탁월함은 무엇이고 그것은 어디로부터 오는가? 현 시점에서의 나는 탁월함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게 되었다.

문제를 무위의 관점에서 정의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이를 해결해 내고야 마는 능력

이를 위해서는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잘 해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특정 도메인의 지식에 얽매여 있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지만, 여기서의 탁월함이란 다소 “문제의 정의와 해결”에 치우친 관점이며,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능숙하게 해내는 사람에 대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고로 나는 어떤 문제를 제시하고 해결함에 있어서 특정 도메인을 나누는 사람들을 그다지 선호하지는 않는다. 대략 이건 누구누구의 영역이고 이건 누구누구의 영역이라는 식이다. 물론 어느 정도 커진 기업에서 효율을 추구하기 위해 분업화되고 전문화 되는 것에 대한 이점은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문제라는 것이 대개 “추상적”인 형태로 다가오기 때문에 이것을 다각도에서 파헤칠 줄 아는 능력이 없다면 좋은 문제를 발견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정리하면, 큰 문제를 제시하고 해결하기 위해서는 탁월함이 필요한데 여기서의 탁월함은 도메인에 얽매이지 않고 문제 자체에 집중해서 문제가 가진 본질적인 추상성을 다각도에서 파악하고 해결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이런 탁월함을 갖추기 위해서 나는 “은유(metaphor)”와 “추론(reasoning)”능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으며, 추론은 아래 소개하겠지만 본질적인 의미에서 은유와 같은 결을 지니므로 내가 생각하는 탁월함에 이르는 가장 중요한 요건은 은유이다.

은유를 잘 하기 위해서는 점들을 잇는 것(Connecting The Dots)이 중요하다.(엔지니어더라도 시를 읽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이 때문이다.) 별개의 것처럼 보이는 것들을 이으면서 다른 각도로 어떤 대상에 접근할 수 있는 능력이 길러지며, 여기에서 통찰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별개의 것들을 잘 잇기 위해서는

  1. 하나의 점에서 뻗어나갈 수 있는 다른 점들을 생각해보고,
  2. 다른 점들에서 이 하나의 점으로 이어질 수 있는 가능성들을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하는 것은 이런 점에서 이점을 준다. 내가 하고 있는 하나의 일을 “잘”하기 위해서는 이 하나의 일을 하면서 얻는 이점이 다른 일들에도 도달하는 과정이 매우 도움이 되며, 동시에 하고 있는 다른 일들이 이 하나의 일을 더 잘하는데 도움을 준다. 이런 움직임들이 유기적으로 일어나게 일들을 설계한 후 “동시에”이들을 하는 것은 비선형적인(급수적인) 이익을 줄 가능성이 높다.

본질을 놓친 멀티 태스킹의 허점

때문에 단순히 “여러가지를 동시에” 하는 것이 핵심이 되면 안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A를 달성하기 위해서 무엇인가를 시작할 때, A이외에 달성할 수 있는 다른 것들이 무엇일지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은유인 것이며, 이 고민을 하게 되는 순간부터 이익을 보면서 일을 시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런 과정 없이 단순히 여러 가지 일들을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것은 의미 없는 스위칭에 불과하며 뭔가 바쁘게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줄 뿐이지만 실제로는 평균 이하의 결과물을 내는 데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컴퓨터도 그렇지만 인간의 뇌도 서로 다른 일을 “스위칭”하는데에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며, 그렇기에 스위칭하는 일이 서로 연결될 수 있는 것들이 아닌 완전히 별개의 것이라면 일을 하나씩 하는 것에 비해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게 된다.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하더라도 그 일들이 유사한 컨텍스트 안에 들어있는 상호 참조 가능한 형태를 최대한 취할 수 있게 된다면 스위칭 자체에 드는 비용도 줄어들고, 상호 참조를 통해 각각의 일들에 대한 인사이트를 더 얻게 된다. 따라서 “여러가지를 동시에” 하기 전에 “여러가지 일들을 동일한 컨텍스트에 넣는 것”이 우선되어야 하며, 이렇게 넣을 수 없는 일들이라면 그냥 따로따로 하는게 좋다고 생각한다.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동시에 여러 가지를 하는 것”은 매우 비싼 작업이며 반드시 Trade Off를 고려해야 하므로 스위칭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이면서 동시에 상호 관련된 여러가지를 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익이 클때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일을 동시에 하려고 한다면 금세 지쳐버리고 말 것이다.

Connecting The Dots

이번에 다소 바쁜 스케줄을 소화해야 하면서도 기를 쓰고 여러 가지를 동시에 하려고 했던 이유는 이 여러 가지 일들이 서로 다른 것들이라 생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스위칭 비용을 매우 줄일 수 있다고 생각했고, 하나의 일에서 얻는 인사이트를 곧바로 다른 3~4개의 일에 시도해볼 수 있는 구조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즉, “서로 다른 일이라고 분류했던 것들이 하나의 문제를 푸는 데 있어 상호 연관되어 있다면, 가급적이면 이들 모두를 연관지어 한번에 해결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의 생각이 있었고, 이는 사고의 본질의 “단어의 환기” 부분을 읽으면서 더 확고해졌다.

사실 개념 구축이라는 현상은 그보다 훨씬 미묘하고 더 유동적이다. 개념은 겹겹이 든 상자가 아니며, 주어진 모든 개념이 이전에 습득한 정확한 집합의 개념으로 엄격하게 정의되거나 언제나 고정된 순서로 습득되지 않는다. 새로운 개념을 습득하면 종종 주택을 지을 때 그 재료가 되는 벽돌의 속성 자체에 영향을 미치는 것과 약간 비슷하게 기반이 된 ‘더 원초적인’ 개념이 큰 영향을 받는다. 재료가 되는 벽돌의 속성을 바꾸는 주택은 사실 쉽게 생기지 않지만 그럼에도 우리 모두는 이 기본적 관념에 익숙하다. 가령 아이들은 부모에게 그 존재를 의존하지만 동시에 그들의 존재는 부모의 삶을 크게 바꾸어놓는다.

우리의 뇌가 개념을 구축하는 방식, 그리고 더 나아가 사고하는 방식은 단방향이라기보다는 양방향이기 때문에 A라는 일을 통해 얻은 인사이트를 B와 C에 적용할 수 있으면서, 여기에 더해 B와 C에 적용한 인사이트들이 다시 A의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구조를 만든다면 1.5 정도의 리소스를 투입해서 3~5 이상의 이익을 얻을 수 있으며 개별 항목에 대해서도 더 나은 직관을 확보하는데 도움을 준다.

따라서 어떤 중요한 일을 해야 할 때, 그 일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점이 4~5개 이상이 되지 않는다면 그 일을 시작하는 것을 잠시 미루면서 추가할 수 있는 일들과 이어볼 수 있는 일들을 먼저 고민한다. 이 고민하는 과정에 시간을 충분히 사용해야 한다.

추론하는 인간

인지의 핵심에서 언급한 추론하다의 정의에 따르면, 추론한다는 것은 어떤 Step을 논리적으로 밟아가는 것이 아니라 현재 활성화된 개념의 어떤 측면이 휴지 상태에서 벗어나 환기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말하는 ‘추론하다’는 단지 어떤 새로운 정신적 요소를 자신이 직면한 상황에 도입하는 것을 뜻한다. 기본적으로 이 말은 현재 활성화된 개념의 어떤 측면이 휴지 상태에서 벗어나 환기되는 것을 뜻한다. 이 새로운 요소가 옳은지 그른지는 중요치 않다. 이전 요소로부터 논리적인 흐름을 따랐는지 여부도 마찬가지다. 우리에게 ‘추론’은 단지 어떤 새로운 요소가 머릿속에서 활성화되었음을 뜻한다.

생각해보면 동일한 물건이나 대상을 두고 개인의 생각이 항상 바뀌는 것도 생각이 어떤 사전에 입력된 논리적 흐름을 따라가는 것보다는 특정 대상으로부터 이어질 수 있는 가능한 여러 다음 개념 중에서 상황에 따라 더 잘 환기되는 개념들의 확률적 연속에 더 가깝기 때문인 것 같다. 이런 관점을 고수한다면, 추론 능력이란 한 개념을 통해서 다른 개념들을 얼마나 더 잘 환기시킬 수 있느냐가 결정하고, 동시에 여러가지 일을 하는 것은 추론능력을 기르는데 도움이 되는 행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까지 온 이상 나는 동시에 여러 일을 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이 되었다. 의미있는 어떤 일을 하려고 할 때, 대부분의 경우 나는 그 일을 성공적으로 완수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이점에 대해 고민하며, 그것이 충분한지에 고민한다. 그리고 동시에 그 일을 성공적으로 완수하지 못했을 떄 내가 얻을 수 있는 이점과, 잃게 되는 손실에 대해 같이 고민한다. 대부분의 경우 성공했을때나 실패했을 때나 얻는것이 있는 비대칭적 구조로 일의 방식을 설계할 수 있으며, 오히려 한 가지에만 집중해서 그것을 성공시킨 뒤에 얻을 수 있는 이점보다도 더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