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스킨의 화폐(Ruskin's Currency)

Posted by sckimynwa on February 24, 2024 · 2 mins read

‘부’의 이름 뒤에 감추어진 인간의 근본적인 욕망은 다름 아닌 ‘타인에 대한 지배력’이다. 좁은 의미에서 부는 하인이나 상인, 그리고 예술가의 노동력을 자신의 유익을 위해 이용하는 힘을 뜻하고, 보다 넓은 의미에서는 국민들의 노동력을 국가의 다양한 목적을 위해 이용하는 힘을 뜻한다.

center

새로운 화폐를 설계하기 위해 기존에 내 머릿속에 들어있던 화폐라는 개념을 분해하고 새롭게 만드는 일들을 반복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것이 기존에 내가 알고 있는 화폐에 대한 개념을 저 멀리 던져버리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화폐에 대한 ‘무위’의 상태에 가까워지기 위함이다. 박 껍질이 목 마른 자에게는 물을 뜨는 양동이가 되고, 어린아이에게는 장난감 배가 될 수 있듯이, 이 글은 상황과 맥락에 맞게 화폐라는 개념을 환기할 수 있는 무위의 경지에 도달해보고자 하는 개인적인 시도에 가깝다.

영국의 철학자 존 러스킨은 저서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에서 부에 대한 냉철한 통찰을 제시한다. 부라는 이름 뒤에 감추어진 인간의 근본적인 욕망은 ‘타인에 대한 지배력’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에서 화폐는 타인에 대한 지배력을 수치화 할 수 있는 수단이 된다.

부를 가진 사람은 화폐로 수치화 될 수 있는 자신의 부를 사용해서 자동차를 구입한다. 단순히 돈을 주고 자동차를 산 것 같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부를 사용해서 자동차를 만드는데 필요한 부품을 구해오는 사람, 설계도를 그리는 사람, 공장을 운영하는 사람, 자동차를 배송하는 사람들에 대한 지배력을 구매한 것이다. 만약 이들에 대한 지배력이 없다면 손수 이 모든 행위를 직접 수행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화폐를 부의 수치화된 표현으로 이해하고, 부를 타인에 대한 지배력으로 이해하는 것이 많은 상황에서 합리적이라면, 지극히 당연하게도 타인에 대한 지배력을 갖고 있는 사람은 부를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으며, 이를 다양한 형태의 부로 ‘환전’하는 것도 가능하다.

지배력이라는 단어에서 다소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어감을 제외한다면, 모든 사람들은 서로 다른 사람들과 살아가면서 지배력을 내주기도 하고, 획득하기도 한다. 부모님을 위해 심부름을 하기도 하고, 동생에게 설거지를 부탁하기도 한다. 실제로 물리적인 화폐가 오가는 것은 아니지만, 타인에 대한 지배력이 보이지 않는 화폐의 형태로 오가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상상해볼 수 있다. (내가 베풀지 않고 계속해서 심부름만 시킬때, 특정 시점에 상대가 반발하는 경우, 더 이상 내가 사용할 부가 없기 때문이라고도 생각해볼 수 있다.)

‘부’의 본질을 이해하려는 이러한 시도는 지극히 합리적인 관점에서 화폐를 포기하고 부의 본질인 타인에 대한 지배력을 구매하면서, 아직 이러한 시도를 해보지 않은 이들에게 줄 수 있는 깊은 인상을 이자로 쳐서 쏠쏠한 투자 수익까지 거둘 수도 있을 것 같다는 가능성을 암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