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nguage Game

Posted by sckimynwa on March 23, 2024 · 3 mins read

언어는 그 순간의 필요가 이룬 서툴고 무질서한 산물이다. 그러나 우리가 매번 새로운 의사소통적 도전을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내는 이 임시 방편들은 이전의 도전들을 해결했을 때 사용한 방식에 의해 형성된다. 그뿐만 아니라 다음 해결책에도 영향을 미친다. 당면한 의사소통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절박한 필요는 중복, 연동, 개입의 패턴을 만들어내며 그 패턴들이 축적되는 과정에서 언어의 체계적 패턴이 발달하기 시작한다. 언어 패턴은 전달하려는 내용이 무엇이건 간에 목적을 위해 우리가 상대방에게 이해시키고자 애쓰는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무수한 즉흥 교환의 산물이다. 따라서 우리는 집단적으로, 그러나 전적으로 우연히 언어를 구축한다 - 진화하는 언어(Language Game)

언어는 어떤 보편 법칙에 따라 연역적으로 쌓아올린 체계적 산물이 아닌 순간의 필요에 의해 협력적으로 구성되는 서툴고 무질서한 산물이다. 즉, 이전에 본 적이 없던 새로운 현상이나 대상이 출현했을 때, 언어를 사용하는 인간은 이를 표현하기 위해 연역적으로 도출된 어떤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즉흥적으로 이를 표현하기 위한 제스처 게임을 고안하며, 기존 컨텍스트와 함께 대화 참여자들과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언어는 인간의 문화와 사회를 구성하는 거의 모든 면을 지탱하기에, 이렇게 제스처 게임을 하는 행위와 이를 통해 도출된 언어라는 결과물은 결과적으로 인간의 문화 발달을 가능하게 한다.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에 대해 제스처 게임을 걸 수 있는가 하는 것은 문명의 존재 여부를 가르는 유인원과 인류의 중요한 차이점 중 하나이다.

위에서 이야기하는 ‘인간’을 조직으로, ‘언어’를 조직 내의 소통구조로 치환해보면 조금더 구체적인 단계에서의 적용이 가능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조직 내에서 의사소통에 참여하는 주체가 얼마나 협력적으로 제스처 게임을 거느냐가 그 조직의 문화 수준과 언어의 수준, 결과적으로는 진화의 수준까지 결정한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가령 조직의 리더가 “이번 상반기에는 비용을 50% 줄여봅시다”라는 목표를 전달했다고 하자. 조직 구성원들은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대신 의미를 협력적으로 재구성하기 위한 제스처 게임을 걸어야 한다. 상반기는 언제까지를 의미하는지, 비용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50%라는 것은 언제를 기준으로 어떻게 측정하는 것인지를 즉흥적으로 교환하면서 전달받은 언어의 구축 수준을 높여가야 한다.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중복, 연동, 개입이 나타나게 되는데, 이 과정이 다소 지루하고 불필요한 것으로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는 사실 언어의 구축 수준을 높여 조직을 다음 단계로 진화 시키는데 반드시 필요한 요소이다. 산업 혁명 이래로 모든 것을 최적화 하고 단순화 하려는 인간과 다르게 자연은 복잡계에 대응하기 위해 충분한 중복과 연동 개입을 포함시켜왔다.

‘괴델, 에셔, 바흐’ 에서는 메시지를 크게 3가지 층위로 나눈다. 메시지가 전달되는 형식인 틀 메시지, 외부 메시지, 그리고 내부 메시지이다. 예를 들어 바닷가에서 종이 쪽지가 담긴 병이 떠내려왔고, 이 종이 쪽지 안에는 영어로 보이는 문자가 적혀있다고 하자. 종이 쪽지를 담은 병이 틀 메시지이고, 영어로 보이는 문자들의 배열이 외부 메시지이고, 연인에 대한 사랑을 담은 글이라는 의미를 담은 것이 내부 메시지이다.

제스처 게임에 참여하는 구성원들은 언어의 형태로 음성, 제스처, 혹은 글에 담겨 떠내려오는 메시지를 해독하여 내부 메시지를 끌어낸 뒤, 이에 대한 이해 수준을 맞추려는 시도를 해야 한다. 자연 과학과 공학 기술도 이런 식으로 발전했으며, 세계를 움직이는 문명들도 이런 식으로 발전해왔다. 둘 이상의 인간이 모여 조직을 만들고 그 조직을 더 나은 수준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협력적으로 제스처 게임을, 자주, 걸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