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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for lovE

All for lovE
Photo by The New York Public Library / Unsplash
어느 날 ‘æ’라는, A와 E가 결합된 합자인 고대 라틴어 글자를 알게 됐습니다. 각자의 모양으로 하나가 된 글자라니. 그 날부터 이 글자는 앨범을 만드는 내내 제가 꿈꾸는 우리들의 모습이 되었던 것 같아요.

우리의 역할, 쓸모, 이름, 성별... 그 모든 것과 상관없이 연결되고 교감할 수 있다는 건 얼마나 멋진가요.
살아갈수록 사랑이란 의미는 서로를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이자, 함께한 시간을 영원히 떠올리게 되는 일이란 생각이 듭니다.

내가 부르는 무엇이든 되어줄 수 있는 당신과, 당신이 부르는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나. 다른 누군가 선뜻 이해하지 못할지언정, 말로 표현하지 못할 무언가로 연결되어있는 우리.

살아가는 동안 어두운 페이지가 아무리 많아도 그 사이에 반짝이는 기억을 나누고 싶은 저의 마음을 전합니다.

- 박효신 EP A&E. 앨범소개

자크 라캉은 인간이 자아를 가지고 태어나지 않는다고 보았다. 갓 태어난 유아는 자기 신체를 통제하지 못하고, 자기 몸을 하나의 통일된 주체로 경험하지도 못한다. 아직 "나"라고 부를 만한 중심이 없기에 손과 발과 입이 제각기 흩어진 파편처럼 느껴진다. 어머니의 품에 안겨 거울 속에서 처음으로 통일된 하나의 형상을 본 순간에도 아이는 그 형상이 자신인지 모른다.

이 어긋남을 봉합하는 것이 어머니의 목소리다. 아이가 거울을 가리킬 때 어머니가 "아이야, 이게 너야"라고 호명하는 순간, 아이는 어머니의 시선이 놓인 자리로 들어가 그 자리에서 자기를 바라보게 된다. 자아란 결국 타자의 시선에서 빌려온 이미지다. 우리가 "나"라고 부르는 그 단단해 보이는 중심은 사실 누군가가 나를 불러주었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그리고 그 호명은 측정 가능성이나 성취가 아니라 나의 존재 그 자체를 향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를 호명하는 목소리는 어머니의 목소리와 다르다. 에로스는 끝내 다 알 수 없는 타자를 향한다. 평생을 함께해도 다 알 수 없는 신비를 향해 다가가는 일이다. 반면 포르노에는 타자가 없다. 모든 것이 노출되고 측정되고 소비될 뿐, 감춰진 것이 없으니 다가갈 신비도 없다. 좋아요 1000개는 나를 명명하지 않는다. 수치가 나를 명명할 뿐이고, 수치로 명명된 자아는 좋아요 1001개에 의해 언제든 대체된다. 1000과 1001 사이에는 어떤 신비도 없다. 더하기 1이 있을 뿐이다. 측정 가능한 것은 본질적으로 비교 가능하고, 비교 가능한 것은 본질적으로 교환 가능하다. 지금 우리를 부르는 목소리는 우리를 교환 가능한 존재로 만들어 무한한 환원성의 고리에 빠뜨린다.

이 구조 안에서 자아는 무한히 미끄러진다. 열심히 공부해 명문대에 들어간 순간, 그보다 높은 기준점이 기다리고 있다. 대학원을 마치면 명문 직장이, 직장에 들어가면 또 다른 성취의 지표가 기다린다. 자아가 타자가 아니라 측정 가능한 지표로 정의되는 한, 모든 지표는 더 높은 지표로 환원되기에 정착할 바닥은 영원히 오지 않는다.

번아웃의 가장 깊은 형상은 체력의 고갈이 아니라 자아의 진공을 자각하는 일이다. 채워야 할 지표는 다 채웠는데, 그 지표들을 채우는 나는 누구인지 아무도 불러주지 않는다는 자각이다. 이것은 내가 약해서가 아니라 외부가 나를 부르지 않아서 일어나는 구조적 사태다. 내가 없어져도 그 자리에 1001번째 누군가가 들어오면 그만인 세계에서, 측정 가능한 것은 결코 나를 지지할 수 없다.

사랑이 필요한 시대다. 거울 앞의 아이가 어머니의 "이게 너야"라는 목소리를 통해 처음으로 자아를 얻었듯이, 우리는 평생에 걸쳐 누군가의 호명을 통해 자아를 다시 세운다. 사랑이란 그 호명을 서로에게 건네는 일이다. 내가 불러주는 이름이 상대를 교환 불가능한 존재로 세우고, 상대가 불러주는 이름이 나의 성취가 아니라 나의 존재를 향할 때, 미끄러지던 자아는 비로소 멈춰 설 바닥을 얻는다. 그 호명은 측정되지 않기에 다음 수치에 밀려나지 않고, 비교되지 않기에 1001번째에게 빼앗기지 않는다.

이것이 사랑이 본질적으로 타자성을 전제하는 이유다. 사랑하는 대상을 끝내 다 알 수 없는 신비로 남겨두고, 환원되지 않는 이름으로 불러주어야 한다. 내가 세계에 제공하는 수치가 형편없고 언제든 환원당할 만한 것이라 해도, 환원 불가능한 이름으로 불리는 한 나에게는 언제든 돌아갈 집이 있다. 측정이 나를 조각낼 때마다 다시 나를 하나로 불러줄 목소리가 있다.

타로의 "THE LOVERS" 카드. 관계를 거울삼아 자신을 발견하는 과정을 상징한다.
어느 날 ‘æ’라는, A와 E가 결합된 합자인 고대 라틴어 글자를 알게 됐습니다. 각자의 모양으로 하나가 된 글자라니.

지난 몇 년간 읽은 문장 중 가장 마음에 드는 문장이다. 각자의 모양을 가진채 하나가 된다는 것은 위대한 일이다. 서로의 이름을 불러줄 때, 각자의 모양이 빚어지고, 상대가 불러주는 그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관계 안에서 각자의 모양은 하나가 된다. 사랑이 필요한 시대다. 사랑은 나를 대체될 수 없는 존재로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