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ce of worldcup
6월 11일, 역대 최대 규모의 북중미 월드컵이 개막한다. 참가국이 32개 팀에서 48개 팀으로 늘면서 총 104경기가 16개 도시에 걸쳐 진행된다. 미국과 캐나다, 멕시코가 공동 개최하지만 104경기 중 78경기를 미국이 맡고 결승전도 뉴욕에서 열린다. 공동 개최라는 명목을 내세우고 있을 뿐 실질적으로는 미국 월드컵이라 봐야 한다.
월드컵은 언제나 이동의 이벤트였다. 선수단이 움직이고, 팬이 따라 움직이고, 그 모든 이동을 카메라에 담으려는 수만 명이 또 움직인다. FIFA는 이번 대회 관중을 약 650만 명으로 예측한다. 이번에는 평균 이동 거리도 역대급으로 길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이 한 도시권 안에서 압축적으로 진행되었던 것과는 다르게, 이번 월드컵은 미국 동부에서 서부를 가로지르고 국경까지 넘어야 하는 초대형 이동 이벤트다.
국제선 위에 국내선이 얹히고, 그 위에 숙박비와 경기장 교통비가 다시 쌓여 비용이 층층이 누적된다. 어쩌면 이번 월드컵에는 세계 최고의 선수들과 우승국, 짜릿한 결승전의 승리보다도 하반기 전 세계 지정학을 좌우할 거대한 정치적 변수인 에너지 가격을 트럼프 정부가 어떻게 다룰 것인가가 더 중요할 지 모른다.

에너지 가격은 지금 너무 너무 비싸다. 이란 전쟁 이후 제트유는 80% 넘게 올랐고 메모리얼데이 기준 휘발유는 갤런당 4.5달러를 넘겼다. 호르무즈는 여전히 불안정하다. 항공사는 운임을 올리거나 공급을 줄이거나 마진을 포기하는 것 외에 선택지가 없다. 경기를 즐기러 온 팬은 티켓값에서 한 번 놀라고, 숙박비에서 또 놀라고, 항공권에서 다시 놀라고, 경기장으로 향하는 교통비에서 한 번 더 놀란다.
미국이 왜 세계 최대 소비국가인지를 다시 증명하려고 기획한 축제가, 미국인의 인플레이션을 매일 체감시키는 무대로 둔갑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행정부에게 이 변수를 다루는 것은 다른 어떤 변수들 보다도 중요하다.
게다가 미국에 있어 정치적으로 이번 월드컵은 매우 중요하다. 미국에 결승전을 포함한 주요 경기들이 몰려 있을 뿐더러 6월과 7월 사이, 미국의 운명을 가를 중요한 정치적 이벤트들이 이 한 달 사이에 몰려 있기 때문이다.
- 6월 10일 5월 CPI 발표
- 6월 11일에서 12일 월드컵 개막
- 6월 16일에서 17일 FOMC
- 그리고 7월 4일 America250
이 이벤트들을 하나로 묶어 설득력있는 서사로 잘 풀어내면 도시가 붐비고 소비가 살아나고 인프라가 작동하는, "미국은 세계 최고의 소비국가며, 유가상승발 인플레이션은 일시적이다"는 서사를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잘못 풀어내면 시장은 같은 장면을 정반대로 읽을 수 있다. 시장이 월드컵을 소비 회복의 상징이 아니라 오히려 끈적한 인플레이션을 크게 체감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미 오른 유가를 단기간에 되돌리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이 시점에서 중요한 건 절대값이 아니라 방향성으로 보인다. 6월 초부터 호르무즈 통항 안정과 긴장 완화 신호를 계속해서 내보내고, 6월 10일날 발표되는 나쁜 CPI(나쁠 수밖에 없다)를 그대로 받아들이지만, 이미 정점을 찍고 내려오는 후행 데이터로 해석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물가 압력의 정점이 이미 지나가고 있다는 프레임이 만들어지면, 유권자가 "더 나빠지지는 않을 것 같다"고 느끼기 시작한다. 이때, FOMC에서 새 연준 의장 워시가 매파적 신뢰를 유지하면서 에너지 충격이 장기 기대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진다는 고리를 끊어줄 때, 시장은 추가 인상 공포의 소멸로부터 안도감을 얻게 된다.
그러므로 이번 월드컵은 서사의 싸움이다. 같은 항공권, 같은 휘발유, 같은 경기장 가는 길이 누군가에게는 "미국이 다시 움직인다"는 증거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모든 게 너무 비싸졌다"는 증거가 된다. 어쩌면 이번 월드컵은 경기보다도 CPI 발표와 FOMC 발표에 조금 더 주목해야 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