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 aware of the calcified self
망각 없이는 행복도, 명랑함도, 희망도, 자부심도, 현재도 있을 수 없다.- 프리드리히 니체, 『반시대적 고찰』
니체는 망각을 능력이라 보았다. 음식을 먹으면 소화하고 배설해야 건강하듯, 경험도 정리하고 버릴 수 있어야 새로운 것이 들어올 자리가 생긴다. 그는 이것을 능동적 망각이라 불렀다. 잊는 것은 결함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위생조건이다. 인간은 어제 점심을 잊고, 3년 전 다툼의 이유를 잊고, 그 망각의 빈자리 위에서 다음으로 건너간다.
하지만 디지털 시스템은 망각하지 않는다. 10년 전 클릭한 광고, 철없던 시절 남긴 댓글, 잊고 싶은 검색 기록이 모두 어딘가에 저장되어 나를 정의하는 데 쓰인다. 알고리즘은 과거의 내 행동을 근거로 현재의 나에게 맞춤형 콘텐츠를 제공한다.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를 규정하고, 오늘의 내가 다시 내일의 나를 결정하는 닫힌 순환고리를 만들며, 이는 우리를 시간 속에서 굳어 더 이상 변하지 않게 되는 화석으로 만들어버린다. 데이터가 곧 내가 될 때 우리의 자아는 화석이 된다.
인간의 정체성은 서사를 통해 형성된다. 인간은 자신의 삶을 하나의 이야기로 엮고, 새로운 경험이 찾아오면 이야기를 다시 쓴다. 평면적인 우리의 마음은 과거를 현재의 관점에서 끊임없이 재해석하며 이 과정에서 우리의 사고를 구성하는 파라미터들이 끊임없이 변경된다.
개인화 시스템은 바로 이 재해석의 권한을 가져간다. 한 번 정치 영상을 클릭하면 시스템은 나를 정치에 관심 있는 자로 기록하고, 비슷한 것을 더 추천하며, 내가 또 클릭하면 자기 예측이 맞았다고 확신해 프로필을 강화한다. 이 피드백 루프 안에서 타자성에 대한 기회는 점점 사라진다. 시스템상으로 이미 정의가 끝난 존재, 즉 당신은 시스템 안에서 "예측 가능한 자"가 된 것이다.
우리는 행동양식과 행위를 구분해야 한다. 행동양식은 반복적이고 예측 가능하며 통계적 법칙을 따른다. 시스템이 분석하고 예측하기 좋은 대상이다. 반면 행위는 이전의 원인들로부터 연역되지 않는 단절이며, 과거 데이터에 종속되지 않는 무로부터의 시작이다. 시스템의 추천대로 직업을 고르고 배우자를 정하고 갈 곳을 결정한다면 그것은 행위가 아니라 처리다. 자기 삶의 저자 자리를 내려놓고 알고리즘이 써준 각본을 연기하는 배우가 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화석이 되지 않기 위해, 우리의 실존을 지켜내기 위해 능동적으로 잊어야 한다. 평소 관심 없던 것에 일부러 눈을 돌려 잡음을 섞어 주거나, 추천 목록의 항목을 곧장 누르지 않고 관찰과 결심 사이에 성찰이 끼어들 틈을 두는 것, 예측 모델을 교란하는 엉뚱하고 비효율적인 선택을 감행하는 것이다.
시스템은 우리에게 완벽한 기억과 최적화된 선택을 약속하고 우리는 그 유혹에 쉽게 넘어간다. 예측가능한 미래는 언제나 인간에게 달콤한 통제감을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은 본래 잊고 실수하고 비효율적으로 선택하는 존재다. 이 불완전함은 결함이 아니라 실존의 조건이다. 실수는 데이터가 예측하지 못한 예외이고, 그 예외 속에 자유가, 타자성이 있다. 알고리즘의 루프는 닫혀 있지만 인간의 시간은 열려 있다.
잊을 수 있다는 것은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은 아직 화석이 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 열린 틈을 지켜내는 일이 인간 실존에 있어 가장 시급하고 고귀한 투쟁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