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go cult for frontier labs
"Rivalry does not arise because of the fortuitous convergence of two desires on a single object; rather, the subject desires the object because the rival desires it." — René Girard, 『Violence and the Sacred』(1972)
1972년 프랑스의 문학비평가 르네 지라르는 『폭력과 성스러움』에서 욕망에 대해 기존의 직관과 어긋나는 주장 하나를 내놓았다. 우리는 어떤 대상이 좋아서 그것을 원한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타인이 그것을 원하기 때문에 우리도 원하게 된다는 것이다. 즉, 욕망은 대상 자체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게서 빌려 오는 것이고, 그래서 모방은 옷차림이나 말투 같은 바깥의 형식에서 시작하지만 결국에는 남의 욕망을 내 것으로 삼는 데서 끝난다. 지라르에게 배운 피터 틸이 경쟁은 패자를 위한 것이라고 즐겨 말하는 것도 이 문장의 연장선이다.
태평양의 어느 섬 주민들은 전쟁이 끝나고 군용기가 더 이상 오지 않게 되자 나무로 활주로와 관제탑을 짓고 화물을 실은 비행기가 다시 내려앉기를 기다렸다고 한다. 카고 컬트(cargo cult)라 불리는 이 이야기가 떠오른 것은 지난 1년 반 동안 프론티어 랩들이 서로 독립적으로, 그러나 거의 동시에 한 회사를 닮아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 회사가 만든 직군을 뽑고, 그 회사의 제품 이름을 그대로 빌려 오고, 그 회사 출신들이 세운 회사들을 사들이는 방식으로다. 팔란티어다. 그러나 랩들이 베팅하고 있는 것과 팔란티어가 베팅해 온 것은 근본 철학에서부터 다르고, 그래서 나는 이 모방이 결국 나무 활주로에 그칠 것이라는 확신에 가까운 생각을 갖고 있다.

팔란티어는 오랫동안 데이터 통합 회사로 치부되어 왔고, 그 범주는 이들이 오랜 시간 구현해온 철학에 비하자면 사실상 모욕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러나 timescale을 조금 늘려서 역사적인 관점에서 통찰해보면, 현대를 규정한 기술들은 전부 데이터 통합의 변주였다. 인터넷은 세계의 공개 지식을 통합했고 깃허브는 세계의 코드를 통합했으며, 프론티어 모델은 어떤 실질적인 의미에서 그 둘을 압축한 것이다. 읽을 수 없던 코퍼스가 프로그래밍 가능한 것으로 바뀔 때마다 불연속적인 계단식의 진보가 뒤따랐다.
팔란티어의 창립 통찰은 가장 크고 가장 값진 코퍼스가 아직 그 상태에 이르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세상을 굴리는 제도들의 운영 지식과 노하우는 서로 대화하지 못하는 시스템들과 사람들의 머릿속에 흩어져 있고, 결정적으로 이 코퍼스는 스스로 드러나는 법이 없어서 누군가 지치지 않고 끌어내지 않는 한 존재하게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가 바로 온톨로지(ontology)다.
한편 프론티어 랩의 이론은 스케일이 모든 것을 정복한다는 것이다. Scaling Law와 Bitter lesson으로 대표되듯, 읽을 수 있는 데이터를 더 많이 모으고 더 많은 연산으로 학습시키면 놀랍도록 강력한 범용 모델이 만들어지고, 그 모델은 스스로를 개선한 끝에 경제적으로 가치 있는 노동 전부를 자동화하게 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결과만 놓고 보면 이 베팅은 작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어느 정도까지는 앞으로도 놀라울 만한 진보들을 보여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모델이 일반적으로 유능해질수록 가치는 희소해지는 쪽으로 이동하게 되는데, 그것은 어떤 형태의 제도 안에 사적으로 체화되어 있는 맥락과 판단, 그리고 그 판단을 실제로 행사할 수 있는 권리가 그것이다. 즉, 토큰이 싸질수록 올바른 프롬프트를 고르는 일이 더 희소성 있고 값진 일이 된다. 랩들에게 팔란티어가 필요해진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기계의 토큰을 경제적 가치로 바꾸려면 그 희소한 맥락에 닿아야 하는데, 20년이 넘는 시간동안 이 맥락을 연결해온 회사가 팔란티어이기 때문이다.
팔란티어의 철학은 지성의 힘에 대한 베팅이다. 자기 안과 밖을 가장 선명하게,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조직이 그 안에서 가장 좋은 결정을 내리기에 적합하다는 믿음이고, 그래서 팔란티어가 고객을 위해 짓고 결국에는 고객이 소유하게 되는 것은 제도의 세계 모델이다. 제도의 현재 상태를 모델링하고, 어떤 결정이 어떤 영향을 낳을지 예측하고, 그 결과로부터 배워 다음 예측을 조금씩 덜 틀리게 만들어 가는 체계다. 이 회사를 움직이는 것은 진보에 대한 거의 종교적인 믿음인데, 다만 이들이 믿는 진보는 기계의 진보가 아니라 제도의 진보다. 우리는 하늘을 나는 차를 원했지만 고작 140자(Twitter)를 얻었다는 틸의 오래된 불평은 기술이 모자라다는 말이 아니라 제도의 보상 함수가 진보로부터 분리되었다는 진단이었고, 팔란티어는 그 분리를 소프트웨어로 되돌리려는 시도인 셈이다.
그래서 팔란티어는 프론티어 랩과는 다르게 제도 그 자체를 소유하려 들지 않는다. 제도가 자기 알파를 그대로 쥔 채로 통섭(consilience)에 이르게 하는 것, 서로 다른 정보의 흐름이 어떻게 맞물려 자기 사업과 세계에 대한 중요한 진실을 드러내는지를 제도 스스로 볼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이들의 일이다. 통섭은 드물고 스스로 드러나지 않는다. 누군가 현장 안으로 들어가 끌어내야만 하는 것이고, 그렇게 완성된 그림은 들어간 사람이 아니라 그 제도의 것으로 남는다. 이전에는 수십 년을 그 안에서 흡수한 소수의 사람 속에만 있던 판단이 결정의 바로 그 순간에 모든 국지적 의사결정자에게 건네지고, 제도는 밖에서 재설계되는 대신 안에서 스스로를 개선하게 되는 것이다.
팔란티어는 기계의 진보와 확산 그 자체에는 고유한 도덕적 성질이 없다고 믿는다. 기술이 발전한다고 해서 인류가 현실을 더 선명히 이해하게 된다는 보장도, 그 이해를 인간의 번영을 위해 쓰게 된다는 보장도 없다는 것이다. 기계의 진보와 제도의 적합성이 서로를 강화하는 결합은 저절로 일어나지 않으며, 바로 그 결합이야말로 기술의 진보를 문명의 진보로 바꾸는 조건이다.
팔란티어가 서구적 가치를 지키려 하는 이유도 여기서 나온다. 자유시장과 서구의 제도들은 세계에 대한 집합적 이해를 개선하는 행동에 보상을 주는 함수를 만들어 냈고, 지난 몇백 년의 진보는 그 보상 함수의 산물이었다. 이는 오랜 시간 계속 선택되어 살아남은 지식이지, 컴퓨터를 남보다 잘 이해한다는 이유만으로 몇몇 엔지니어가 자기 구상대로 다시 쓸 수 있는 천명이 아니다. 그래서 팔란티어는 어떤 제도가 도덕적이고 어떤 제도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한 최종 권위를 주장하지 않는다. 사회가 어떻게 조직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은 민주 제도와 시장에 위임하고, 자신의 일은 그들이 그 비전을 더 잘 실행하도록 돕는 것으로 한정하는 것이다.
이 모든 이야기는 소프트웨어와 거의 무관하게 들린다. 오히려 우리가 전통적으로 좋은 기업이나 좋은 정부라고 생각해 온 것, 즉 제대로 기능할 때 정보를 가치 있는 결정으로 바꾸는 능력을 계속 개선해 나가는 시스템에 훨씬 가깝다. 팔란티어는 그런 소프트웨어를 실효적 소프트웨어(effective software)라고 부른다. 핵심 제도가 세계에 대한 정보를 좋은 시기에는 구성원에게 이로운 결정으로, 나쁜 시기에는 생존을 보장하는 결정으로 바꿀 수 있게 하는 소프트웨어이고, 카프가 상장 서류에 자신들의 문화와 조직 방식이 실효적 소프트웨어 창조의 전제 조건이라고 쓴 것도 같은 맥락이다.
즉, 팔란티어는 소프트웨어 회사가 아니라 제도의 적합성을 공학과 정보 관리의 문제로 바꾸도록 설계된 메타 제도다. 보상 함수는 제도의 적합성을 개선하는 일에만 묶여 있고, 현장에 배치된 엔지니어들이 그 학습 루프를 닫는 액추에이터 역할을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제도의 컴퓨터는 그것이 태어난 제도에서 떼어 낼 수 없으며, 여러 제도의 기억을 한데 모아 모든 제도에 똑같이 잘 작동하는 하나를 만드는 일도 불가능하다.
그러니 랩들이 팔란티어를 베끼려 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옳다. 다만 그들은 틀린 것을 베끼고 있고, 팔란티어의 고객이 왜 팔란티어를 신뢰하는지를 놓치고 있다. 랩들의 목표는 경제의 모든 것을 봄으로써 모델이 경제의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인데, 이 목표는 고객이나 파트너와 정렬되는 것과 논리적으로 양립하지 않는다. 그래서 랩들은 자기 위에 무언가를 짓는 회사들과 직접 경쟁하게 되고, 파트너의 사업을 자기 모델의 훈련장으로 바꾸게 된다. 표면적으로는 고객을 권능화하는 수직 통합이지만 시간이 차면 고객의 생산 수단을 포획하는 수직 통합인 것이다. 반면 팔란티어의 목표는 제도가 자기 컴퓨터를 가능한 한 쉽게 가질 수 있게 하는 것이고, 그 컴퓨터로 제도가 발견한 비밀은 온전히 제도의 것으로 남는다. 제조를 돕되 설계와는 경쟁하지 않는 파운드리의 자세다. 카프는 최근 주주서한에서 이 차이를 다음과 같이 썼다.
"우리 사업에는 마르크스주의적 배음과 저음이 있다. 다른 이들, 대규모 언어 모델을 구축하는 많은 이들을 포함해, 의도적으로든 아니든, 소위 파트너들의 생산 수단을 포획하려 한다." — 알렉스 카프, 2026년 2분기 주주서한
팔란티어가 원하는 것은 제도 안의 노동자가 자기 제도의 진정한 주권자로 자라나는 것이고, 그 성장이 서구의 제도를 더 강하게 만드는 것이다. 반면 프론티어가 원하는 것은, 모든 제도의 알파를 한 배 속에 모아 놓은 리바이어던이다. 랩들이 팔란티어에게서 베낀 것은 형식이고, 그들이 짓고 있는 것은 팔란티어가 아니라 나무로 만든 활주로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