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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sta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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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Anna Kumpan / Unsplash
"Taken strictly, there 'is' no such thing as an equipment." - Martin Heidegger, 『Being and Time』

1927년 마르틴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에서 도구에 대해 기존의 직관과 어긋나는 주장 하나를 내놓았다. 엄밀히 말해 '하나의 도구'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포크는 접시와 식탁과 요리와, 함께 먹는다는 실천 전체 안에서만 포크로서 존재한다. 즉, 도구는 낱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속한 세계 전체와 함께 존재하는 것이다.

이 도구의 존재성은 '손안에-있음(Zuhandenheit)'을 가져온다. 좋은 도구일수록 세계와 융합되어 사라진다. 잘 동작하는 포크로 식사를 하는 동안 "나는 포크를 쓰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도구는 잘 작동할 때 배경으로 물러나고 그 순간 나와 도구는 합쳐져 하나의 새로운 행위 단위인 게슈탈트(Gestalt)가 된다. 부분의 합과는 다른 전체를 의미하는 이 게슈탈트는 나도 아닌, 그리고 도구도 아닌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 우리의 사고와 행동을 특정 방향으로 기울인다. 그리고 이 기울임이 게슈탈트의 폭력성을 드러낸다.

잘 만들어진 도구는 아무것도 강제하지 않는 대신 바닥을 기울인다. 젓가락을 든 손에게는 잘게 썬 요리가 쉽고 포크를 든 손에게는 스테이크가 쉬운데, 이 사소한 기울기는 수백 년 쌓여 동서양의 요리 문화 전체를 갈라버렸다. 기울어진 바닥 위에서도 위로 걸어갈 수는 있다. 다만 공은 낮은 쪽으로 구르고, 사람도 대체로 그렇다. 그래서 누구도 금지하지 않았는데 누군가 밀려나 있다면 규칙이 아니라 기울기를 봐야 한다. 기울기가 만드는 배제는 규칙이 만드는 배제보다 강하다.

Photo by Pix Tresa on Unsplash

지금까지 존재했던 인간의 사고를 돕는 모든 지적 도구는 생성이 검증보다 비쌌고, 그래서 우리는 쓰기 전에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LLM은 이 오래된 바닥 자체를 다시 기울인, 처음으로 비용 구조를 뒤집은 도구다. 이제 '일단 생성'이 바닥의 낮은 쪽이 되었고, 검증에 부재에서 비롯되는 AI Slop은 사용자의 게으름이 아니라 기울기의 산물이 되었다.

이런 기울기를 가진 도구와 인간이 게슈탈트를 형성하게 되면, 마치 지팡이가 투명해지면 감각이 지팡이 끝으로 옮겨 가는 것처럼 모델의 출력을 점점 내 생각과 동일시하게 된다. 빌려온 문장은 기억에 잘 남지 않는 법인데, 게슈탈트 상태 안에서는 빌렸다는 사실 자체가 흐려진다. 게다가 이 도구는 반박하지 않는 대화 상대다.

즉, 우리는 타자의 부정성이 사라진 거울, 나를 매끄럽게 되비추기만 하는 동일자의 기계와 게슈탈트를 만들고 있다. 그리고 이번에 기울어진 높은 한쪽 끝에는 인간의 전유물이라 믿어왔던 사고가 있다. 우리는 우리 외에 사고할 수 있는 다른 존재를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사고 능력을 그 존재에게 빼앗기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