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min read

now that we have intelligence, we need dionysus

now that we have intelligence, we need dionysus
Photo by Sandy Millar / Unsplash
This whole era of AI is teaching us that our idea of what intelligence is, is not really accurate. - Terence Tao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데카르트 이후에 이르기까지, 인류는 지능을 신성하고 환원 불가능한, 오직 인간만의 전유물로 여겨왔다. 근대 철학은 그 위에 자아를 세웠고, 문명 전체는 그것이 우리를 다른 모든 존재자로부터 구분짓는다는 가정 위에 지어졌다.

그러나 기계는 어느 날부터 오직 인류만이 풀 수 있다고 맹세했던 문제들을 차례로 풀기 시작했다. 체스로 시작해서, 시각, 언어, 그리고 수학과 추론에 이르기까지. 그때마다 인류는 같은 방어선을 폈다. 저건 진짜 지능이 아니다, 그저 패턴 매칭일 뿐이다, 알고리즘일 뿐이다. 그렇게 선을 다시 그으며 조금씩 뒤로 밀려났다. 이제 더 이상 밀려날 곳이 없는 자리에 이르러, 인류는 지능이라는 것이 우리가 믿어온 그것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의심을 품게 된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150년 전 한 사람이 거대 언어 모델이라는 도구 없이 같은 의심에 먼저 도달해 있었다는 사실이다. 니체는 「비극의 탄생」에서 소크라테스를 그리스 정신의 영웅이 아닌 쇠퇴의 상징으로 규정했다. 본래 본능이 창조자이고 이성이 비판자여야 하는데, 소크라테스에 이르러 그 위계가 뒤집혀 본능을 억압한 이성이 창조자 행세를 하기 시작했다는 진단이었다. 이듬해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진리란 "우리가 환상임을 잊어버린 은유들의 군대"라고 적었다. 진리를 그저 패턴에 불과한 것으로 규정한 것이다.

그렇다면 진리란 무엇인가? 움직이는 은유들의 군대, 환유들, 의인화들 - 요컨대 시적·수사적으로 고양되고 옮겨지고 장식된 인간 관계들의 총합이며, 오랜 사용 끝에 한 민족에게 확고하고 규범적이며 구속력 있는 것으로 여겨지게 된 것들이다. 진리란 그것이 환상임을 우리가 잊어버린 환상들이다
- 『비도덕적 의미에서의 진리와 거짓에 관하여

거대 언어 모델은 한 번에 한 단어씩 다음 단어를 예측한다. 그런데도 작동한다. 그리고 타오는 자신이 평생 해온 수학적 사고의 상당 부분이 같은 종류의 동작이었을지 모른다고 인정한다. 분석만으로 의미에 닿을 수 있다는 소크라테스적 약속의 한계는, 더 이상 미학적 권고가 아니라 인류가 매일 마주하는 현실로 드러났다.

니체는 소크라테스가 약속했지만 가져다주지 못하는 것을 디오니소스적 도취에서 찾는다. 현대 예술이 잃어버린, 고대 그리스의 비극이 갖고 있던 바로 그것이다. 아폴론적 형식, 즉 체계, 분석, 디자인, 전략은 그 도취를 인간이 견디고 운반할 수 있는 형태로 바꾸는 도구일 뿐이다. 형식 없는 도취는 광기, 도취 없는 형식은 빈 껍데기지만, 의미를 논할 때 일차적인 것은 늘 도취로부터 온다는 것이다. 아름다운 것도, 의미 있는 삶도, 분석을 통해 이성적으로 추론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분석이 거들어 형태를 얻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사고가 패턴 매칭이라는 사실이 아니라, 그 사실을 인식했음에도 여전히 패턴의 정련만으로 의미와 아름다움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는 일일지도 모른다. 확률을 돌리는 기계 한 대가 거울을 들어올렸고, 인류는 이제 거울에 비친 상을 보았다. 우리는 지능을 잃은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어디까지인지를 보았고, 그 너머에 무엇이 있어야 하는지를 다시 묻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