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ontology
AX(AI Transformation)가 화두로 떠오르면서 자연스럽게 "온톨로지(Ontology)"가 부각되고 있다. 그러나 이 단어가 가진 본래적 추상성과 모호함으로 인해 온톨로지가 무엇이며, 이를 어떻게 구축할 수 있는지에 관한 이야기보다는 그저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Silver Bullet이자, Magic Word로서만 사용되고 있는 듯 하다.
온톨로지를 구축하는 과정은 필연적으로 고통을 수반한다. 많은 사람들이 온톨로지에 대해 간과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두 가지 진실은, 온톨로지는 조직 외부의 누군가가 대신 구축해 줄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라는 점, 그리고 도입하는 과정 그 자체가 가장 중요하다는 점이다.
온톨로지는 그 단어 자체로 언어철학적이다. 본래 "존재에 대한 학문"을 의미하며, 이것이 조직 내에 적용되었을 때는, 조직 내 특정 존재를 다수가 어떻게 정의내리고, 그들로부터 조직 내 세계들이 어떻게 구성되는지에 대한 합의를 다루는 것으로 확장된다.
조직 안에 떠다니는 개념들은 물리적 실체가 아니라 사람들이 만들어낸 언어적 합의물이다. 그렇기에 본질이 실존에 앞서는 것 같아보이는 개념들도, 조직 내에서 떠다니기 시작하는 순간 사실은 실존이 본질에 앞서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이 지점이 조직 내에 온톨로지를 정의하고 도입하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예컨대 세일즈 조직에게 고객은 계약서에 서명한 법인을 의미하고, 제품 조직에게 고객은 매주 들어와 기능을 쓰는 활성 사용자를 의미하며, 고객지원 조직에게 고객은 마지막으로 이슈 티켓을 연 그 사람을 의미한다. 매출, 결함, 잠재 고객, 활성 사용자, 어느 단어도 예외없이 조직마다 다른 정의의 그림자가 따라온다. 이처럼 실존이 본질에 앞서는 특정 존재에 대한 조직 내의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 존재에 대한 온톨로지는 정의될 수 없고, 이에 따라 사람이든 AI든 이를 이해하고 외부 세계와 관계를 맺을 수 없다.
성공적인 온톨로지 구축 사례로 꼽히는 팔란티어 - 에어버스 사례에서, 팔란티어가 에어버스에 들어가 정말로 했던 일은 A350의 인도 속도를 33% 끌어올린 것이 아니라 그 33%가 나오기 전에 "결함"과 "부품"과 "지연"이라는 단어를 수천 명의 실무자가 같은 의미로 부르게 만든 일이었다. 즉, 온톨로지는 결과물이 아니라 조직 내 합의의 결정체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그 합의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온톨로지는 본질적으로 탑다운이다. 합의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누군가가 결정해서 "고객은 이것을 의미한다"고 못 박는 순간에야 비로소 실현된다. 그러나 그 탑다운 결정이 올바르려면, 위에서 결정을 내리는 사람이 아래의 실무자들이 그 단어를 실제로 어떻게 쓰고 있는지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의사결정 체계가 여러 단계로 계층화된 조직에서는 상위 관리자가 실무자의 언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정보는 매 단계를 지날 때마다 추상화되어 전달되고, 추상화될수록 단어는 빈 껍데기에 가까워지기 때문이다. AX 도입의 가장 큰 병목이 바로 여기에 있다. Top-down 결정을 위한 Bottom-up의 맥락이 없는 것. 실무자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면 실무자의 일을 정의할 수 없고, 정의할 수 없는 일 위에 AI 에이전트를 올리는 것은 신뢰할 수 있는 결과를 전달하지 못한다.
성공적인 AX전환이 조직 내 합의된 온톨로지를 전제하기 때문에, 이 간극을 메우는 것은 필연적이다. 온톨로지는 한번 자리를 잡으면 그 위에 쌓이는 모든 데이터와 AI의 모든 판단이 같은 언어 위에서 정렬되기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복리처럼 작동한다. 반대로 정의가 흔들리는 조직에서는 데이터가 쌓일수록 노이즈가 증폭된다. 그래서 이 간극을 얼마나 빠르게 메우는가는 결국 조직의 경쟁력과 직결된다.
이를 위해 나는 이 글에서 실질적 가치를 만들기 위한 철학적 필요를 위해 Pre-Ontology라는 레이어를 새롭게 정의할 필요성을 느낀다. 온톨로지가 조직이 합의해 결정한 조직 내 언어의 집합이라면, Pre-Ontology는 조직 안에 흩어져 있는 단어들의 원석이다. "고객"이라는 개념을 실무자들이 실제로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그 단어가 다른 어떤 개념들과 묶여 함께 등장하는지, 어떤 결정의 순간에 그 단어가 동원되었는지를 모은 살아 있는 언어의 더미를 의미하는 것이다.
온톨로지가 탑다운으로 찍히는 결정이라면, Pre-Ontology는 바텀업으로 모이는 재료다. 그리고 결정의 품질은 결국 재료의 품질에 비례한다. 규모 있는 회사에서 AX의 성패는 온톨로지의 도입 수준에 비례할 것이며, 그 도입을 가속화하려면 앞단에 Pre-Ontology가 반드시 놓여야 한다. 조직 내 온톨로지 도입에 있어 한 두번의 외부 컨설팅으로 결과를 만들어내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Pre-Ontology의 원료, 즉 실무자의 살아 있는 언어는 대부분 입으로 주고받는 대화 속에 있다. 단지 중요한 회의뿐 아니라, 짧게 주고받는 단순한 대화들까지도 우리는 실존하는 조직 내 언어들을 통해 소통한다. 슬랙과 이메일에 남는 것은 전체 비즈니스 맥락의 10%에 불과하다. 왜 그 결정을 내렸는지, 어떤 조건이 붙었는지, 시니어 매니저가 신입에게 "우리 고객"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풀어 설명했는지와 같은 정말 중요한 맥락들은 대화가 끝나는 순간 공기 속으로 사라진다.
따라서 온톨로지를 향한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 조직 내 모든 중요한 대화들을 기록하고 맥락으로 가공해내는 티로(Tiro)의 가치가 점점 중요해짐을 체감하고 있다. 휴대폰, 스마트워치, 데스크탑을 가리지 않고 어떤 인터페이스에서든 정확하게 기록하고, 적절한 권한을 기반으로 안전하게 저장하고, 이를 기반으로 조직의 언어와 맥락을 필요할때, 원하는 방식으로 꺼내쓰는 제품을 큰 파도를 앞둔 지금 시대가 요구하고 있다.
언어 모델이 그 어느때보다 발달한 지금, 역설적이게도, 경쟁력은 언어에서 온다. 실무자의 언어를 바텀 업으로 올려 Pre-Ontology를 구축하고, 이를 기반으로 정확한 Ontology를 정의해 내는 조직이 이 새로운 파도를 가장 능숙하게 타게 될 것이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