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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cond derivative

second derivative
Photo by Maheshkumar Painam / Unsplash
"I've been warning various important Germans privately for a long time that if you do not take migration seriously, … it's going to be a disaster. Even if I am wrong on every point, I am right about what will happen politically." - Alex Karp

어떤 문제에 대한 판단은 두 층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층은 무엇이 옳은가를 다투는 층이다. 이민을 얼마나 받아야 하는지, 기술이 만든 부를 어떻게 나눠야 하는지 등에 대해 우리는 얼마든지 다르게 생각할 수 있으며, 옳고 그름을 정의내리는 방법조차 달라질 수 있다. 한편, 둘째 층은 그 문제를 외면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를 다룬다. 이것을 문제 판단의 이계도함수(second derivative)라고 부를 수 있다. 첫째 층에서 서로 생각이 다른 것은 괜찮다. 그러나 첫째 층에 대한 논쟁 자체를 멈추면, 둘째 층에서 발생하는 결과는 누구도 피하기 어렵다.

둘째 층에서 일어나는 일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사람들이 매일 체감하는 문제를 입에 올리는 것이 손해가 되는 순간, 주류는 말을 멈춘다. 그러나 말을 멈췄다고 해서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주류가 비워 둔 자리를 채우는 것은, 말하는 데 드는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잃을 것이 없거나, 금기를 깨는 것 자체로 얻는 것이 있는 사람들, 즉 극단이다. 그렇게 문제는 극단의 것이 된다. 결국 권력은 문제를 풀려는 사람에게서 빠져나가 문제를 만들어 힘을 얻으려는 사람에게로 넘어간다. 문제가 풀리는 순간 존재 이유를 잃는 사람에게 그 문제를 맡긴 셈이니, 문제는 풀리기는커녕 점점 커질 수밖에 없다.

1944년 칼 폴라니는 『거대한 전환』에서 사람들의 삶을 흔드는 문제는 외면한다고 사라지지 않고, 사회는 반드시 자신을 지키려는 반작용(countermovement)을 일으킨다고 말했다. 반작용은 누구도 계획하지 않은 채 일어나지만, 누가 그것을 받아 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얼굴로 나타난다. 예컨대 같은 위기를 미국에서는 뉴딜 정책이, 독일과 이탈리아에서는 파시즘이 받아 냈다. 문제를 말하지 않는다고 반작용이 오지 않는 것이 아니라, 반작용을 받아 낼 자리를 남에게 비워 줄 뿐이다.

옳고 그름은 다툴 수 있다. 다툴 수 없는 것은 다투기를 멈춘 다음에 오는 일들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시 다툴 수 있는 자리가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