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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the ancients called a clever fighter is one who not only wins, but excels in winning with ease. Hence his victories bring him neither reputation for wisdom nor credit for courage." - Sun Tzu, The Art of War (tr. Lionel Giles, 1910)
손자병법의 첫 편인 시계(始計)편은 도(道)·천(天)·지(地)·장(將)·법(法)을 세우고 아군과 적군을 하나씩 견주어 승리를 가늠한다. 가장 앞에는 "도"가 있다. 도는 백성이 군주와 같은 뜻을 품게 하는 것, 즉 "왜 싸우는가"에 대한 답이다. 결국 국지적인 전투에서의 승리가 아닌 국가의 명운이 담긴 전쟁을 할 때에는 그 무엇보다도 도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손자는 이것을 가장 먼저 묻고, 그 다음에야 하늘과 땅, 장수와 법을 차례로 이야기한다.
도를 제외한 나머지 요소들 가운데 관심 있게 보고 있는 것이 지(地), 곧 지형이다. 지형(地形)편은 땅을 여섯 가지로 나누고, 장수가 땅마다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를 말한다.
- 첫째는 통형(通形)이다. 나도 갈 수 있고 적도 올 수 있는 트인 땅이다. 이런 곳에서는 먼저 높은 곳을 차지하고 보급로를 지키는 쪽이 이긴다.
- 둘째는 괘형(挂形)이다. 들어가기는 쉬워도 돌아 나오기 어려운 땅이다. 적이 대비하지 않았다면 나가서 이기지만, 대비하고 있다면 이기지도 못하고 돌아오지도 못한다.
- 셋째는 지형(支形)이다. 먼저 나서는 쪽이 불리한 땅이다. 적이 미끼를 던져도 나가지 말고, 오히려 물러나 적이 반쯤 나왔을 때 친다.
- 넷째는 애형(隘形), 좁은 길목이다. 내가 먼저 차지했다면 입구를 가득 채우고 적을 기다리고, 적이 먼저 차지해 가득 채웠다면 따라 들어가지 말라고 한다.
- 다섯째는 험형(險形), 높고 험한 땅이다. 먼저 올라가 있으면 높은 곳에서 적을 기다리고, 적이 먼저 올라갔다면 물러나 쫓지 말라고 한다.먼저 오른 쪽은 버티기 쉽고, 뒤에 오른 쪽은 오르는 동안 지친다.
- 여섯째는 원형(遠形), 멀리 떨어진 땅이다. 세력이 비슷하다면 싸움을 걸기 어렵고, 싸워도 불리하다.

지형은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같은 땅이라도 어떤 장수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무덤이 되기도 하고 승리의 자리가 되기도 한다. 1597년 이순신 장군은 열세 척의 배로 울둘목에서 백삼십여 척의 일본 수군을 맞아 승리를 거두었다. 넓은 바다에서라면 배의 숫자가 곧 힘이지만, 물길이 좁고 조류가 거센 애형의 울돌목에서는 배가 많을수록 불리하고, 역사는 열세 척의 배가 승리한 사실을 기록했다.
개인적으로 퍼플렉시티(Perplexity)를 좋아한다. 지형을 기민하게 잘 이용하여 이 시끄러운 AI 판에서 조용히 영토를 넓혀가고 있기 때문이다. 2022년 모두가 퍼플렉시티를 이야기하던 시기도 있었지만, 2026년의 실리콘밸리는 더 이상 이 회사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 사이 퍼플렉시티의 ARR(Annual Recurring Revenue)은 올해 들어 세 배가 넘게 늘었고, 가장 주목받던 2024년보다 열 배 이상 큰 돈을 벌고 있다. 피를 흘리며 이름을 알리는 국지전에서 이긴 것이 아니라, 아무도 보지 않는 사이 조용히 전투에서 이기며 영토를 넓혀 온 것이다.
2022년 퍼플렉시티에게 AI기반 검색은 애형(隘形), 즉 좁은 길목이었다. 손자는 좁은 길목을 먼저 차지했다면 입구를 가득 채우고 적을 기다리라고 말한다. 퍼플렉시티는 당시 트렌드였던 AI 모델 경쟁에 뛰어들지 않고 그때그때 가장 좋은 모델을 가져다 쓰면서, 가진 힘을 전부 답의 품질과 출시 속도에 쏟았다. 길목을 지나는 사람들이 떠나지 않게 만드는 일, 입구를 가득 채우는 일에 집중한 것이다.
반면 구글에게 같은 땅은 지형(支形), 먼저 나서는 쪽이 불리한 땅이었다. 구글은 얼마든지 같은 것을 만들 수 있었지만, 할 수 있음과 실행할 수 있음은 다르다. 구글 매출의 대부분은 검색 결과 사이의 광고에서 나오고, 답을 바로 건네는 순간 사용자는 광고를 누를 이유가 사라진다. 2023년 바드(Bard)의 시연 답변 하나가 틀렸다는 이유로 알파벳의 시가총액이 하루에 1,000억 달러 빠진 일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구글은 결국 광고를 지키며 답을 주는 법을 찾아 들어왔고, AI 검색은 누구나 오가는 통형(通形), 즉 트인 땅이 되었다. 트인 땅에서는 높은 곳과 보급로를 먼저 쥔 쪽이 이기고, 지형이 이렇게 바뀐 순간, 전세는 이미 구글에게 유리할 수 밖에 없다. 퍼플렉시티가 잘한 것은 이 변화를 빨리 읽었다는 점이다. 길목이 트인 땅으로 바뀌는 순간, 같은 자리에서 버티는 것은 더 이상 길목을 지키는 일이 아니라 체력 싸움에 끌려 들어가는 일이 된다. 퍼플렉시티는 트인 땅에서 구글과 맞붙지 않고, 다음 땅을 찾아 옮겨 갔다.
퍼플렉시티는 항상 새로운 땅으로 옮겨가기 전 지형을 아주 조심스레 읽는 것 같다. 물론 코멧(Comet) 브라우저 처럼 지형을 잘못 읽어 전투에서 패배한 사례도 있지만, 이들은 이것이 전쟁의 패배가 되지 않도록 빠르게 병력을 철수시키고 다른 지형을 읽기 시작한다. 결국 컴퓨터 앞의 일을 대신 처리하는 에이전트라는 새로운 길목을 찾아냈고, 구글에게 그곳은 다시 한번 먼저 나서면 손해를 보는 땅이었다. 퍼플렉시티는 이렇게 2026년에도 에이전트라는 새로운 지형에서 승리를 거두며 영토를 넓혔다.
매일같이 누가 어디서 얼마를 투자받았고, 누가 어떤 기술을 가졌고, 어떤 젊은 창업자가 기막힌 아이템을 들고 왔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이는 예컨대 뛰어난 전투력으로 국지전에서 거둔 승리들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라와 나라가 맞붙는 큰 전쟁은 국지전 몇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역사가 방증하는 사실이다.
한니발은 칸나이에서 로마군을 거의 전멸시켰지만, 로마는 결전을 피하며 버텼고, 한니발은 끝내 고향으로 돌아가 전쟁에서 패배했다. 나폴레옹은 러시아에서 전투마다 이겼고 모스크바까지 들어갔지만, 러시아의 혹독한 추위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전쟁에서 패배했다. 역사에 화려하게 남은 것은 칸나이와 모스크바 입성이지만, 전쟁을 이긴 쪽은 따로 있었다.
손자는 군형(軍形)편에서 잘 싸우는 자는 이기기 쉬운 싸움에서 이긴다고 말한다. 이기는 군대는 먼저 이겨 놓고 싸움을 구하고, 지는 군대는 먼저 싸우고 나서 이기기를 구한다. 그래서 잘 싸우는 자의 승리에는 지혜롭다는 이름도, 용맹하다는 공도 남지 않는다. 이기는 것이 당연한 싸움이었기 때문이다. 나라를 승리로 이끈 싸움일수록 기록에 남지 않는 이유다.
개인적으로 지금 하는 일이 역사에 기록될 멋진 국지전 하나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런 기록은 없어도 된다. 사실 아무도 우리를 몰라도 된다. 비겁하리만치 이기는 싸움만 골라 영토를 넓히고, 끝까지 버텨 전쟁에서 끝끝내 이기는 것만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