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gnal from space
"What I cannot create, I do not understand." — Richard Feynman
4년쯤 전부터, 세틀로직(Satellogic)이라는 회사를 알게 되어 투자를 시작했다. 직접 만든 소형 위성 수십 기로 지구를 1m 해상도로 촬영하는 회사다. 회사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인공위성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그렇게 인공위성을 직접 만들어 띄워보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인공위성을 개인의 수준에서 만들고 띄워 지구에서 통신하는 데 비용을 추산해보니 위성을 제작하는 데에는 수백만 원 정도로 지출 가능한 수준이었지만, 발사하는 데에는 최소 5억 원 이상의 금액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여기에 지상국을 세우고 수신 / 송신하는 장비를 마련하는 비용도 별도로 발생한다. 개인 수준에서 여러 번 발사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한번 발사 하는 위성의 완성도를 높이고 통신할 준비가 마무리되어 있어야 했다.
Merlin.01 is in orbit. 🚀
— Satellogic (@Satellogic) October 2, 2026
Following yesterday’s successful #SpaceX Falcon 9 launch, Merlin.01 and three NewSats have made contact with our ground station network, with good health reports across all subsystems.
This launch marks another step in building the infrastructure for…
그래서 우선 도메인에 대한 Presence를 먼저 높이기 위해 이미 떠 있는 아마추어 대역 내 인공위성들의 신호를 수신하고 송신해보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동시에 송신에 필요한 자격을 갖추는 일, 그리고 위성을 지상에서 몇 가지 모형으로 만들어 시뮬레이션하는 일을 함께 진행하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가장 작게 시작할 수 있는 방식으로, 아마추어 대역에서 동작하는 인공위성의 신호를 먼저 받아보기로 했다. 인공위성은 여러 대역에서 동작한다. 가령, SpaceX의 Starlink는 10~30GHz에 걸친 Ku·Ka 대역으로 인터넷을 실어 나르고, 세틀로직 같은 지구관측 위성은 8GHz 부근의 X 대역으로 영상을 내려보낸다. 주파수가 높을수록 한 번에 실어 보낼 수 있는 데이터는 많아지지만, 그만큼 위성을 정밀하게 겨누는 전용 안테나가 필요하다.
그 아래쪽, 145MHz와 435MHz 부근에 아마추어 위성이 동작하는 대역이 있다. 초당 몇 킬로비트밖에 실어 보내지 못하지만, 금속 막대 몇 개로 만든 안테나로도 신호를 잡을 수 있다. 무엇보다 이 대역은 통신할 때 원칙적으로 암호화가 금지되어 있어서 누구나 쉽게 수신할 수 있고, 한국에서는 수신에 자격도 필요 없다. (송신은 아마추어 무선기사 자격이 필요하다)
마침 올 5월 새롭게 이사한 사당동 집이 제일 꼭대기 층인 데다 옥상이 비어 있고 꽤 넓어서, 여기에 간이 전파수신국을 만들기로 했다. 위성은 내 지평선 위에 떠 있는 동안에만 신호를 들려준다. 건물에 가리지 않고 지평선 가까이까지 하늘이 트여 있을수록, 그 목소리를 더 오래 들을 수 있다.

수신국 설치는 GPT-6 Astra의 도움을 받았다. 어떤 대역을 수신해야 하는지, 어떤 프로그램을 설치해야 하는지 알려주었고, 직접 설치까지 함께 해주었다. 수신기는 SDR(Software Defined Radio)이다. 들어온 전파를 곧바로 소리로 바꾸는 대신 있는 그대로 숫자로 받아 적어 두는 장비라, 해석은 전부 나중에 소프트웨어로 한다. 녹음은 SatDump라는 오픈소스 위성 수신 프로그램으로 했다.
10월 1일 새벽, 처음 5시 30분경 시도한 수신은 실패했다. 아무래도 안테나 방향 때문이었던 것 같다. 30분 뒤 6시경부터 31분간 다시 수신했고, 그동안 받아 적은 숫자만 7.6GB였다.

가로축은 주파수, 세로축은 시간이다. 밝게 빛나는 자리일수록 그 순간 그 주파수에 강한 전파가 들어왔다는 뜻이다. 이 데이터에서 유의미한 신호를 발견할 수 있었고, 이를 읽고 해석할 수 있는 신호로 만드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먼저 도플러 효과다. 다가오는 구급차의 사이렌이 높게 들리다가 지나치는 순간 낮아지는 것처럼, 초속 7km로 하늘을 가로지르는 위성의 신호도 다가올 때는 높게, 멀어질 때는 낮게 수 kHz씩 미끄러진다. 그래서 위성의 궤도 정보(TLE)와 옥상의 좌표로 매 순간 위성이 얼마나 빠르게 다가오고 멀어지는지를 계산해, 그만큼 주파수를 되돌려 놓았다. 그 다음 비콘이 있을 법한 좁은 구간만 오려내고, 그 안에서도 폭 200Hz짜리 틈으로 신호 하나만 걸러냈다. 그렇게 찾은 신호는 안내된 주파수 435.605MHz보다 2.7kHz쯤 아래에 있었다.
남은 건 켜졌다 꺼졌다 하는 소리다. 모스 부호는 전파를 짧게 켜면 점, 길게 켜면 선이 되는 신호다. 공식 규격에 따라 0.01초마다 신호의 세기를 재서 기준보다 크면 켜짐, 작으면 꺼짐으로 판정했다. 잡음 때문에 잠깐 끊긴 틈은 메우고, 너무 짧게 튄 펄스는 버렸다. 그러자 약 0.18초짜리 점과 약 0.55초짜리 선이 또렷하게 갈라졌다. 이것을 모스 부호표에 대어 보니 .-.는 R, ...는 S, ....-는 4였다.

.-. / ... / ....- / ....-, 즉 RS44였다. 서울에 해가 뜨기 직전인 6시 23분 51초부터 약 27초 간격으로, 같은 패턴이 여섯 번 연속 반복됐다. RS-44라는 위성이 자신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 비콘(beacon)이었다.

아래는 실제로 걸러낸 신호를 귀에 잘 들리는 높이로 옮긴 12초다. 모스 부호로 새로 합성한 소리가 아니라, 그날 옥상에 내려온 소리 그대로다.
RS-44는 2019년 12월 러시아의 로콧 로켓에 실려 올라간 아마추어 위성이다. 러시아 위성 제조사 레셰트네프와 시베리아 국립 항공우주대학 학생들이 만들었고, 지상 1,200~1,500km 높이의 궤도를 돌며 지금도 자기 이름을 부른다. 보통의 소형 위성보다 두세 배 높이 떠 있는 덕분에, 한 번 지평선 위로 떠오르면 길게는 20분 남짓 머문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 하드웨어와 장비를 통해 우주에서 들려온 소리를 직접 수신했다. 오랜 시간 소프트웨어만 만들어오다가, 이렇게 소리를 직접 수신하고 변환하고 이해하는 과정을 손으로 거쳐보니 벅찬 감동이 있었다.
다음은 송신이다. 아마추어무선기사 자격증을 따고, 송신을 위한 장비를 갖춘 뒤 정식 무선국을 만들어야 한다. RS-44는 비콘만 내보내는 위성이 아니다. 지상에서 올려 보낸 전파를 받아 다시 넓게 뿌려주는 중계기를 싣고 있어서, 자격을 갖추면 오늘 이름만 들려준 이 위성을 거쳐 수천 km 떨어진 누군가와 말을 주고받을 수 있다. 한편으로는 아마추어 위성과 기상위성이 내려보내는 기상 관측, 지구 관측 데이터를 본격적으로 소화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위성 설계를 시작했다. GPT-6 Astra 모델이 3D CAD 도면을 상당히 잘 그려준다. 이 도면을 기반으로 모형을 한번 제작하고, 필요한 부품들을 조달해서 실제로 통신이 가능한 위성 모형을 3U 정도로 만들어보는 것이 다음 목표다. 1U는 한 변이 10cm인 정육면체이고, 3U는 그것을 세 개 이어 붙인 크기다. 세틀로직도 처음부터 지구를 찍는 위성을 쏘지 않았다. 2013년에 쏘아 올린 첫 위성 CubeBug-1은 2U 크기의 큐브샛이었고, 437MHz 아마추어 대역으로 교신했다. 먼저 제작할 위성의 이름은 Yeoul - Wendy 1호 라는 이름을 담아 YW-01 으로 할 예정이다.

"내 위성을 하늘 위에 띄워보고 싶다"라는 막연한 꿈이 구체적인 실행을 통해 점차 지평이 넓어지는 광경을 마주하고 있다. 나는 참 좋은 시대에 태어났다. 호기심을 끝까지 밀어붙일 수 있는 시대에 태어나서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