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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 yellow

blue yellow
No. 37/No. 19 (Slate Blue and Brown on Plum) by Yeoul Kim
"To paint a small picture is to place yourself outside your experience. However you paint the larger picture, you are in it. It isn't something you command." - Mark Rothko

의도하지 않았지만,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마크 로스코의 그림을 만나는 행운을 누렸다. 로스코가 생전 자신의 그림을 두고,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서 압도되는 경험을 하기를 바랐다는 내용이 문득 떠올라 가능한 가까이 다가가서 보려 했다. 인간의 시야에는 사각지대가 있고, 뇌는 쉽게 착각하기 때문에, 그림으로부터 18인치(약 45cm) 정도까지 다가가면 캔버스의 가장자리가 흐릿하게사라지고, 그림이 시야 전체를 지배하게 된다.

Yeoul in MoMA by Wendy

실제로 그림 앞으로 다가가 시야를 가장자리 없는 색채로 가득 채우고 나서야 이유를 알 수 없는 우울함을 조금씩 느낄 수 있었다. 바로 옆에 걸린 「No. 5/No. 22」는 밝은 노란색이 주조인 그림이었는데도 비슷한 성질의 우울감이 느껴지는 듯 했고, 아내는 그것을 우울한 노란색, blue yellow라고 불렀다.

2018년 즈음 마크 로스코의 전기를 읽은 적이 있다. 당시 추상이라는 것이 예술로서 도대체 무엇을 표현하고자 하는 것인지에 대해 막연히 고민하고 있던 때였다. 피카소의 황소와 같은 류의 추상 예술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피카소가 하나의 석판 위에서 황소를 여러 번 고쳐 그리며 살과 근육을 덜어내 본질에 가까운 몇 개의 선만 남기는 과정은 추상에 대한 어렴풋한 실루엣을 전해주기에 충분했다.

피카소의 추상성에서는 황소에서 황소가 아닌 것을 아무리 덜어내도 결국 황소의 본질은 시각적으로, 직관적으로 남아있다. 그러나 로스코의 캔버스에는 애초에 남겨진 것이라고는 색채밖에 없었기에, 피카소가 그려내고자 한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무언가를 추상화하려고 한 것 같았다.


로스코는 니체의 『비극의 탄생』이 자기 사유의 문법을 영원히 물들였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비극의 탄생에서 니체는 실레노스의 입을 빌려 인간에게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이냐는 미다스 왕의 물음에, 가장 좋은 것은 태어나지 않는 것이고 그 다음은 빨리 죽는 것이라 답한다.

비극의 탄생 - 니체
"Oh, wretched race of a day, children of chance and misery, why do ye compel me to say to you what it were most expedient for you not to hear? What is best of all is for ever beyond your reach: not to be born, not to be, to be nothing. The second best for you, however, is soon to die."
- Friedrich Nietzsche, 『The Birth of Tragedy』

그리스인들은 삶에 대한 이 끔찍한 진실을 누구보다 잘 알았고, 그것을 견디기 위해 두 신의 힘을 빌려야만 했다. 하나는 빛과 꿈의 신 아폴론의 힘이다. 공포는 어둠 속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부스럭거릴 때 가장 커진다. 아폴론은 이 어둠에 빛을 비춰 형체 없는 것에 윤곽을 부여한다. 즉 세상이 "설명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바다이고 저것은 배이며, 여기까지가 나이고 저기부터가 너다.

올림포스의 신들은 이 힘으로 빚어진 거울이다. 제우스는 질투하고, 아테나는 싸우고, 아프로디테는 사랑에 빠진다. 신들은 인간과 똑같은 삶을 살되, 늙지도 죽지도 않은 채 빛 속에서 영원히 산다. 니체는 이것을 신들이 인간의 삶을 스스로 살아 보임으로써 그 삶을 정당화한 것이라 말한다. 가장 높은 존재들이 기꺼이 사는 삶이라면, 그것은 벗어나야 할 삶이 아니라 살 만한 삶이라는 논리다.

다른 하나는 술과 도취의 신 디오니소스의 힘이다. 죽음이 두려운 것은 사라지는 것이 다름 아닌 '나'이기 때문이고, 고통이 무거운 것은 그것을 오직 나 혼자 짊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디오니소스는 아폴론이 그어 둔 경계선을 지운다. 포도주와 북소리, 밤새 이어지는 춤 속에서, 니체의 표현을 빌리자면 노예는 자유인이 되고 필요와 관습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세워 둔 장벽이 모두 무너진다. 축제에 모인 사람들은 이름과 신분을 잊고, 나의 숨과 옆 사람의 숨, 나의 고통과 세계의 고통을 구분하지 못한다. 아폴론이 세상을 "설명되게" 한다면, 디오니소스는 세상을 "함께 겪게" 한다.

비극은 이 두 힘이 한자리에서 동시에 작동하는 예술이었다. 무대 위의 영웅은 또렷한 형상으로 서서 운명 앞에 파멸하고, 무대 앞의 합창은 노래와 춤으로 관객을 그 파멸 한가운데로 끌어들인다. 관객은 한 사람이 부서지는 모습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동시에 그 속으로 함께 녹아들고, 그 끔찍함 속에서 오히려 장엄함을 느낀다. 비극은 고통을 덮는 대신, 직시하게 하되 견딜 수 있는 것으로 변환하는 예술이다.

1943년, 전쟁의 한가운데서 로스코는 뉴욕타임스에 보낸 편지에, 비극적이고 시대를 초월하는 주제만이 유효하다고 썼다. 세계가 무너져 내리는 동안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는 일은, 그에게 그리스인들이 실레노스의 지혜 앞에 올림포스를 세운 일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캔버스에서 인물과 풍경을 지웠다. 세계를 보이는 그대로 그리면 한 순간의 스냅샷만이 남을 뿐, 그 세계가 품은 비극성은 담기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그가 지운 것은 아폴론이 아니라, 특정한 시대와 이야기에 묶인 대상이었다. 사각형의 가장자리는 번질지언정 끝내 사라지지 않는다. 피카소가 덜어낸 끝에 황소를 남겼다면, 로스코는 덜어낸 끝에 사각형이라는 가장 작은 아폴론을 남겼다.

그렇게 로스코의 캔버스는 다시 지어진 그리스 극장이 된다. 번지는 색은 설명하지 않고 슬픔 그 자체를 들려주는 합창이고, 사각형은 그 속으로 녹아들었다가 다시 붙잡고 돌아올 수 있는 무대다. 무대 위 영웅의 자리는 신화 속 영웅의 것이 아니라, 언젠가 부서질 존재로서 그림 앞에 선 사람의 것이다. 로스코가 어두운 조명과 가까운 거리를 고집한 것도 관객을 이 무대 위로 초대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구경꾼은 구경이 끝나면 잊어버리지만, 초대받은 사람은 그 생생한 경험으로 자신의 경로를 바꾼다. 로스코의 추상이 의미를 갖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