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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cc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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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Anna Wangler / Unsplash
"All I want to know is where I'm going to die, so I'll never go there."
— Charlie Munger

삶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개념을 스스로 명확히 정의하지 않은 채 추구하다 보면, 결국 타인이 내린 정의를 따라가게 된다. 성공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공을 추구하지만, 실제로는 타인이 정의한 성공을 별다른 고민 없이 받아들여 그대로 추구하고 있거나, 스스로 정의를 내렸다 하더라도 그것이 깊은 성찰의 결과가 아니라 그때그때 즉흥적으로 조립된 산물인 경우가 많다. 나 역시 어렴풋이 그렇다는 것을 느끼면서, 성공을 스스로 명확히 정의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오랜 기간 추구해온 장기투자자로서의 삶과 비아 네가티바(via negativa)적 프레임, 그리고 안티프래질이라는 가치들을 함께 고려하면, 내게 성공은 두 가지 요소의 합으로 정의된다. 실패하지 않음의 지속,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연히 찾아오는 행운들을 즐길 줄 아는 태도의 합이 곧 성공이다.

실패라 함은 어떤 사건이 비가역적이거나 그에 가까운 영향을 남겨 복구가 불가능하거나, 복구하는 데 남은 삶의 상당 부분을 할애해야 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돌이킬 수 없는 피해만 입지 않는다면 행운은 언젠가 찾아오기 마련이며, 주어진 순간에 한두 번만 제대로 붙잡아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이는 사업에서의 성공을 정의하는데도 영향을 미친다. 생각해 보면, 폭발적인 성장을 위해 큰 판을 거는 행위에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느끼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 같다. 하나의 사건이 의도대로 풀리면 크게 좋아지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사업 전체가 크게 흔들릴 만큼 큰 규모의 베팅을 연속적으로 해야만 한다면, 결국 개별 사건의 성패에 연연할 수밖에 없다. 이런 구조에서는 절실함이 미덕처럼 보일 수 있지만, 장기적인 관점으로 살폈을 때, 그것이 얼마나 지속 가능한지는 모르겠다.

개별 사건들이 만약 내 뜻대로 되지 않더라도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면(물론 그렇게 하고자 하는 것과 실제로 모든 일들을 그렇게 만드는 것은 매우 다른 난이도의 일이긴 하지만), 하나하나의 결과에 연연하지 않게 되고, 오히려 내가 무언가를 얻어내야 하는 상대방에게 대담한 태도로 협상할 수 있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의도치 않은 행운들이 많이 찾아오기도 하는 것 같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버티는 일에 드는 비용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단위 시간당 자극의 크기를 극대화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하나의 일이나 하나의 판에 오래 머무르려는 사람들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그 결과, 단지 그 자리에 남아 있는 것만으로도 생존의 손익분기점이 낮아지는 시대가 되었다. 재능이 승부를 가르는 게임보다 시간이 승부를 가르는 게임의 비중이 커지는 시대이며, 이는 곧 꾸준히 버티는 사람에게 유리한 시대가 왔다는 것을 함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