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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s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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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Hamed Mohtashami pouya / Unsplash

무엇이든 만들 수 있는 시대가 되어 가면서, 병목은 점점 무엇을 만들 것인지를 정하는 일로 옮겨가고 있다. 무엇이 좋은지를 확실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의 가치가 올라감에 따라 취향은 점점 더 추구하기에 바람직한 자산이 되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변에서 확고한 취향을 가진 사람은 오히려 더 찾아보기 어려워진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취향은 단순한 체험의 풍요에서 자연스럽게 비롯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것을 많이 보고 새로운 것을 많이 느껴본다 하더라도, 거기서 멈추어 더 나아가지 못한다면 그 체험이 개인의 취향으로 전환되지는 않는다.

존 듀이는 『경험으로서의 예술』에서 알아보기(recognition)와 지각(perception)을 구분한다. 알아보기는 자유롭게 전개되기 전에 지각이 멈추어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대개 무언가를 마주하면, 그 대상을 제대로 들여다보기 전에 이미 알고 있는 방식으로 그 대상에 대해 이름부터 붙인다. 익숙한 대상으로 범주화 해버리는 것이다. 이에 대상을 체험하는 일이 시작되지만, 곧바로 익숙한 판단이 그 자리를 대신해버린다.

좋다고 알려진 것을 좋다고 확인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대부분의 체험이 여기에 속한다. 도식이 먼저 있고 대상은 그 도식을 확인하는 데만 쓰인다. 취향이 줄어드는 이유가 여기 있다. 알아볼 것이 많아질수록 알아보기만 하고 지나가게 된다.

취향을 위해 필요한 것은 좋은 것을 더 보는 일이 아니다. 도식이 맞지 않아 판단이 멈추지 못하는 상태, 혹은 기존의 도식을 제거하고 완전한 "무"의 상태로 다시 들여다보는 것이다. 좋은데 왜 좋은지 모르겠는 불편함, 싫은데 왜 싫은지 설명할 수 없는 상태. 그것은 아직 아무것도 아니지만, 취향은 그 자리에서 비로소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