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lf-replicating civilization
1948년 캘리포니아 패서디나에서 열린 힉슨 심포지엄. 존 폰 노이만은 이 자리에서 기계에 관한 질문 하나를 던진다. 기계가 스스로를 복제할 수 있는가. 그리고 복제를 거듭하는 동안 기계가 더 정교해질 수 있는가.
기계가 자기 자신을 그대로 복제하려면, 자신을 만드는 데 필요한 완전한 설계도를 자기 안에 담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 설계도 역시 기계의 일부이니, 설계도는 자기 자신에 대한 설명까지 포함해야 하고, 그 설명은 다시 그 설명에 대한 설명을 포함해야 한다. Computer Science에서 콰인(Quine)이라 부르는, 자기 자신의 소스코드를 그대로 출력하는 프로그램이 부딪히는 문제와 똑같다.
exec(s:='print("exec(s:=%r)"%s)')Quine의 아주 간단한 예시
이에 대한 폰 노이만의 해법은 설계도, 즉 청사진을 두 가지 다른 방식으로 쓰는 것이었다. 범용 생성기는 청사진을 해석해서 몸체를 만든다. 이때 만들어지는 몸체에는 생성기와 복사기까지 포함되지만, 청사진 자체는 아직 들어 있지 않다. 그 다음 범용 복사기가 등장한다. 복사기는 청사진을 해석하지 않는다. 그저 있는 그대로 기계적으로 베껴 방금 만들어진 몸체에 끼워 넣을 뿐이다. 복사기가 하는 일이 해석이 아니라 복제이기 때문에, 청사진은 복사 과정 자체를 설명할 필요가 없다.
청사진에 대한 생성기와 복사기로의 분리가 없으면 자기복제는 두 가지 방식으로 실패한다. 생성기만 있고 복사기가 없다면, 태어난 기계는 몸은 있지만 청사진이 없는 불임 상태가 되어 세대가 거기서 끝난다. 반대로 복사기만 있고 생성기가 없다면, 청사진은 무한히 복사되지만 그것을 몸으로 옮겨줄 방법이 없다. 해석해서 짓는 생성과, 해석 없이 베끼는 복제. 이 둘이 함께 있어야만 다음 세대가 다시 그 다음 세대를 낳을 수 있는, 진짜 의미의 자기복제가 성립한다.
정확히 같은 이중 구조가 생명을 복제할 때 사용된다. DNA가 리보솜에 의해 읽힐 때는 해석의 과정을 거친다. 코돈이라는 세 염기 조합이 특정 아미노산으로 번역되고, 그렇게 만들어진 단백질이 세포라는 몸을 짓는다. 반면 DNA가 복제효소에 의해 복제될 때는 해석 없는 단순 복제의 과정을 거친다. 중합효소는 유전 정보의 의미를 전혀 모른 채, 아데닌은 티민과 구아닌은 시토신과 결합한다는 화학 법칙만 따라 염기서열을 그대로 베낀다. 생명은 해석해서 몸을 짓는 리보솜과, 해석 없이 그대로 베끼는 복제효소를 통해 스스로를 복제한다.
Optimus+PV will be the first Von Neumann probe, a machine fully capable of replicating itself using raw materials found in space
— Elon Musk (@elonmusk) March 21, 2026
범용 지능에 근접한 인류는 이제 이 지능을 탑재한 물리적 존재를 만들어내려 한다. 태양광을 탑재한 휴머노이드는 폰 노이만 기계다. 청사진의 자리에는 신경망에 저장된 휴머노이드의 설계 데이터가, 범용 생성기의 자리에는 채굴하고 조립하는 휴머노이드의 몸체가, 범용 복사기의 자리에는 그 설계 데이터를 새 기체에 그대로 옮겨 심는 과정이 들어선다. 여기에 태양광(PV)이 더해지면, 폰 노이만이 이론적으로만 전제했던 "무한 자원 공급"이라는 조건도 실질적으로 충족된다.
지금의 휴머노이드는 원석에서 나사를 만드는 것 조차 하기 어렵지만, 폰 노이만의 통찰은 복잡성에는 문턱이 존재하며, 그 문턱을 넘는 순간 기계가 세대를 거듭할수록 지수적으로 진화하기 시작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중요한 것은 지금 얼마나 멀리 있느냐가 아니라, 지수적 진화의 고리가 닫히는 그 문턱을 넘을 수 있느냐다.
문명은 축적된 지식과, 그 지식을 읽어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는 주체라는 두 가지 요소가 결합해 스스로를 재생산하는 체계다. 인류가 사라져도 지식과, 그 지식을 읽어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는 주체가 남아있다면 문명은 이어진다.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에서 해리 셀던이 은하 제국의 붕괴 앞에서 지키려 한 것이 함대나 영토가 아니라 지식, 즉 은하 대백과사전이었던 것은 지극히 논리적인 판단이다.
거대 언어 모델은 인류가 문자로 남긴 지식 대부분을 압축해 담고 있다. 어쩌면 이것은 인류 버전의 은하 대백과사전의 초기 형태일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이 지식은 텍스트라는 정보 공간 안에 갇혀 축적되어 왔지만, 이제 텍스트 단위를 넘어 원자 단위로, 즉 물리 세계를 지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형태로 축적되려 하고 있다.
지식과 판단하는 주체가 하나로 묶여 스스로를 복제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문명 역시 복제할 수 있다. 하나의 행성, 하나의 태양, 하나의 종에 갇혀 있지 않은 문명이다. 어딘가 하나가 꺼져도 다른 어딘가에서 같은 지식과 같은 판단 능력이 다시 불을 켤 수 있는 문명이다. 그렇게 되면 인류가 지금 가진 것, 어쩌면 우주에서 가장 희귀할지도 모르는 이 판단하고 의미를 묻는 능력, 그 의식의 불꽃이 어느 한 순간의 우연으로 완전히 꺼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인류는 지금 스스로를 복제할 수 있는 문명을 위한 고리를 닫기 직전까지 온 것 같다.